조선건국 사천이백오십이(1919)년 3월 1일 오후 2시 민족대표 33인은 서울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대한독립만세’를 삼창했다. 동시에 탑골공원에서 학생과 시민도 같은 의식을 거행하고 가두행진에 들어감으로써 3ㆍ1운동의 막이 올랐다. 이후 독립만세시위운동은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졌다.

3ㆍ1독립선언서는 국한문 혼용체인데다 지금 잘 쓰지 않는 한자용어가 많아 그 뜻을 쉽게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중후한 문장에 심오한 내용을 담고 있어, 국가와 민족의 자주독립, 세계와 인류의 평등공영을 아주 기품 있게 천명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특히 첫머리의 ‘우리는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만방에 고하여 인류평등의 대의를 극명(克明)하며 자손만대에 고하여 민족자존의 정권(正權)을 영유(永有)케 하노라’라는 구절은 비할 바 없는 명문이다. 나머지는 이것의 정당성과 방법론 등을 설명하는 문장으로 짜여있다.

우리는 반만년 역사의 권위와 이천만 민중의 충성으로 항구적 자유발전과 세계적 개조광명에 동참하기 위해, 또 일본의 침략주의와 강권주의에서 벗어나 영구완전의 경복을 누리기 위해 일어섰으니 아무도 저지억제할 수 없다. 우리는 양심의 명령에 따라 신운명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일본이 신의와 의리가 없다고 미워하여 물리치지 않고, 스스로 잘못을 바로잡아 바르고 큰 원칙으로 나오도록 이끌겠다. 그런데도 일본이 이천만 민중의 분한 마음과 쌓인 원한을 강한 힘으로 속박하면 동양의 평화를 해치고 4억 중국인까지 일본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함께 멸망하는 비운을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조선독립이야말로 조선의 정당한 생존과 번영을 보장함과 동시에 일본을 그릇된 길에서, 중국을 두려운 의심에서 벗어나게 하여 동양평화 세계발전 인류행복으로 더불어 나가게 할 것이다. 한마디로 3ㆍ1독립선언서는 인류가 지금까지 갈고 닦고 기른 인도적 정신의 실현이라는 차원에서 조선의 독립과 자주를 주창했다고 볼 수 있다.

3ㆍ1독립선언서는 공약삼장(公約三章)에서 떳떳하고 올바르고 당당한 의사표명과 평화시위를 운동방법으로 제시했다. ‘1. 오늘 우리의 거사는 정의 인도 생존 존영을 위하는 민족적 요구이니 오직 자유적 정신을 발휘할 것이지 결코 배타적 감정으로 내달리지 말라. 1.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민족의 정당한 의사를 쾌히 발표하라. 1. 일체 행동은 가장 질서를 존중하여 우리의 주장과 태도를 어디까지나 광명정대하게 하라.’ 요컨대 우리의 요구를 정정당당하게 끝까지 자유롭게 주장하되 일탈과 폭력에 빠지지 말라고 경계했다. 그리고 정의로운 민족운동은 천백세 조상의 영혼이 은밀히 돕고 전세계 기운이 밖에서 지켜주기 때문에 반드시 성공하리라고 믿었다.

최남선은 이전 독립선언서들을 참조하여 3ㆍ1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이상설 유인석 등은 국권피탈 소식을 듣자마자 망명지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독립운동가 8,624명 연명으로 ‘성명회선언’(聲名會宣言)을 발표했다(1910.8.23). 일본의 죄를 성토하고 우리민족의 원통함을 밝히며 자유를 얻을 때까지 무기를 들고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명언했다. 박은식 박용만 등 14명이 서명한 ‘대동단결선언’은 조소앙이 기초했는데, 독립운동을 통수하는 유일기관으로서 임시정부를 수립할 것을 제창했다(1917.7). 이광수가 집필하고 최팔용 백관수 등 11명이 기명한 도쿄 ‘조선청년독립단선언서’(1919.2.8)는 일본이 우리민족의 정당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영원히 혈전을 벌이겠다고 천명했다. 3ㆍ1독립선언서는 민족 대다수가 일제 총칼에 직접 노출되어 생활하고 있는 국내현실을 감안하여 이들보다 온건한 운동방략을 제시했다.

3ㆍ1독립선언서는 대한제국 이래 뭉쳐난 민족운동의 주의주장을 수렴하여 독립 자주 인도 평화 정의 자유 평등 화합 공존을 담은 헌장으로 버무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으로 전수했다. 한반도의 내외정세가 아주 불안한데다 강대국의 국익제일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한일관계마저 붕괴위기에 직면한 오늘, 엄혹한 상황에서도 국가민족의 독립자주와 인류사회의 평등공영을 추구한 3ㆍ1독립선언서에서 난국타개의 지혜와 교훈을 얻기 바란다.

정재정 서울시립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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