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당역 고위인사 영접… “미스터 김, 세이 헬로” 시민 환호
金 전용 벤츠 차량 타고 하노이行… 멜리아 호텔로 직행
약 66시간의 ‘특별열차 대장정’을 마치고 26일 오전 베트남에 입성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첫 일정은 북한대사관 방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베트남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하는 등 55년 만에 베트남을 찾은 북한 최고지도자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오후 5시쯤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호텔을 나서 북한대사관으로 향했다. 숙소에 들어선 지 6시간 만의 첫 대외 일정이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과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김여정 당 제1부부장 등이 김 위원장의 대사관행을 수행했다.
김 위원장이 대사관으로 들어서자 조용했던 건물 안에서는 “만세” 하는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환호성과 함께 박수 소리도 들렸다. 약 50분간 대사관 방문 후 김 위원장은 곧장 숙소로 복귀했다.
앞서 북한 평양에서 출발한 특별열차는 이날 오전 8시 12분쯤 베트남 북부 랑선성 동당역에 들어섰다. 플랫폼에 마련된 하차장과 김 위원장이 탑승한 객차 문을 정확히 맞추기 위한 작업이 약 5분간 진행되는 동안, 하차장 양 옆에서 대기하던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은 하차장 위에 깔아 놓은 레드카펫이 구겨지지 않도록 정비하는 등 마지막까지 의전에 최선을 기울였다.
김여정 제1부부장은 김 위원장이 열차에서 내리기에 앞서 김창선 부장과 함께 레드카펫과 주변 상황을 살펴본 뒤 다시 열차에 올랐다. 두 사람이 김 위원장 의전 담당의 양대 축임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장면이었다. 김 위원장은 세로 줄무늬가 있는 검은 인민복을 착용한 채 김 부장의 안내를 받아 열차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는 뒤로 바짝 넘겨 고정시켰고, 안경은 쓰지 않았다. 얼굴엔 엷은 미소를 띠고 있었으나, 긴 시간 여행에 지친 기색도 묻어났다.
김 위원장은 영접 나온 보 반 트엉 베트남 공산당 선전담당 정치국원은 김 위원장과 10여 초가량 악수를 나누며 대화했다. 베트남 당 최고위 인사가 김 위원장을 맞은 것은,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 북한과 베트남의 교류가 국가적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당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이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서 북측 통역관이 김 위원장을 놓쳐 허둥대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정부 측 환영 인사를 받은 뒤 역사 바깥으로 모습을 드러낸 김 위원장은 자신을 환영하기 위해 몇 시간 전부터 대기하고 있던 시민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웃었다. 검은색 전통 의상, 흰색 점퍼 등을 맞춰 입고 대기하던 이들은 손에 들고 있던 베트남ㆍ북한 국기, 꽃을 흔들면서 환호했다. 베트남 정부는 환영 행사를 위해 랑선성 여성, 학생 등 수백 명을 동원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은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에게 “매우 행복하다. 베트남에 매우 고맙다”고 말했다고 VN익스프레스 등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김 위원장을 직접 보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온 시민들도 많았다.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시민들은 동당역 인근에서 삼삼오오 모여 그를 지켜봤다. ‘김정은’을 또박또박 발음하는 이도 제법 보였다. 르티미둥(20)씨는 “김 위원장 같은 유명한 인물이 랑선성을 찾다니 흥분된다. 베트남이 (회담 장소로) 선택된 것이 기쁘다”고 했다.
12명의 ‘방탄 경호단’은 김 위원장이 플랫폼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전용 벤츠 차량에 탑승할 때까지 그의 옆에서 밀착 경호했다. 바로 출발할 듯했던 벤츠 차량이 하노이로 향하는 도로 방향으로 90도가량 회전한 뒤 잠시 멈추자, 김 위원장은 창문을 반쯤 내린 뒤 시민들에게 수차례 손을 흔들었다. 인파 속에서는 ‘아’ 하는 함성이 나왔고, “미스터 김, 세이 헬로(Mr. Kim, Say hello)” 등을 외치며 시선을 끌고자 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사이렌 소리와 함께 차량은 8시 27분 하노이를 향해 달렸다. 김 위원장의 출발과 동시에 수일 동안 김 위원장을 맞을 준비를 하며 고조됐던 랑선성의 긴장감은 한순간에 누그러졌다. 굳은 표정으로 동당역 인근을 경계ㆍ경호했던 군경들도 역사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는 등 시민들은 축제 분위기를 즐겼다.
베트남 정부가 동당시~하노이를 잇는 국도 1호선 170㎞ 구간을 통제한 덕에 차량은 평소 네 시간 가까이 걸리는 구간을 2시간 30분 만에 돌파했다. 하노이로 향하는 길에 첨단산업단지인 박닌성이나 북한군 묘역이 위치한 박장성 등에 들를 것이란 관측도 제기됐으나, 김 위원장은 숙소인 멜리아호텔로 직행해 여장을 풀었다. 23일 북한 평양에서 출발한 열차의 이동거리는 총 3,800㎞가량이며, 중국 내에서만 3,500여㎞에 달한다.
랑선성ㆍ하노이=신은별 기자 ebsh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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