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식
“1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나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었습니다. 1ㆍ4 후퇴 때 지뢰에 남편 잃고 아들 둘 홀로 키우며 안 해본 일 없이 살다 보니 이제야 공부의 한을 풀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을 끝이라 생각하지 않고 더 도전할겁니다.”
26일 서울 대흥동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린 일성여자중고등학교 졸업식에서 여든 아홉의 나이로 졸업장을 받아 든 김순실씨의 졸업 소감이다. 김씨는 공부를 계속 이어나갈 생각이다. 원래 고구려대학 아동노인복지과에도 합격했지만, 나이를 생각해 마포구에 있어서 가까운 양원주부학교로 진학할 생각이다.
이날 만학의 결실을 맺은 이들은 최고령자 김씨를 비롯, 중학교 7개반 281명, 고등학교 6개반 212명에 이른다. 고등학교 졸업생의 평균 나이는 무려 64세. 이들 모두 대학에 합격, 13년째 대학 합격률 100% 기록을 이어갔다. 이 가운데 80% 정도는 실제로 대학이나 평생교육학습원 등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할 예정이다.
숭의여대 패션디자인과에 수석합격한 강대원(70)씨는 “내 나이 열 셋에 부모님 돌아가신 뒤 누구 하나 조언해줄 사람이 없어 공부할 때를 놓쳤다”며 “일흔이 다된 지금에야 대학생이 되지만 돌아가신 부모님이 아신다면 ‘우리 딸 장하다’며 꼭 안아주실 것 같다”며 기뻐했다.
일성여자중고는 여자라는 이유로, 가난하다는 이유 등으로 제 때 학업을 마치지 못한 40대 이상 만학도들을 위한 2년제 학력인정 평생학교다. 함경북도 북청 출신 실향민들이 1952년 설립한 야학에서 출발, 2000년 지금 이름으로 바꾼 뒤 올해까지 중ㆍ고등학생 졸업생을 각각 5,154명, 4,075명씩 배출했다. 다음달 4일 입학식에서는 최고령 김보부(87)씨를 비롯, 560명의 만학도가 새롭게 중ㆍ고교 과정을 시작한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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