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북중회담 발언록’서 드러나… “中이 앞장서 달라” 요청에 시진핑 “비핵화부터 해야” 선 긋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제재를 해제하는 것이 어렵다면 미국이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김 위원장은 또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미국의 성의 있는 자세를 촉구하며 북미 양측이 동시에 과감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27, 28일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종전선언을 넘어 평화협정 체결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룰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시 주석에게 설명한 것으로 드러났다.
본보가 26일 입수한 1월 북중 정상회담 주요 발언 발췌록에 따르면 김 위원장은 “우리는 비핵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면서 “하지만 미국은 오히려 제재를 강화하고 있다”고 불만을 쏟아냈다. 김 위원장은 또 “미국이 좀 더 진전된 자세를 보여야 한다”고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경제제재의 고삐를 늦추는 적극적인 태도를 보이지 않는 한 비핵화 프로세스는 어림없다는 입장이다. 김 위원장은 당시 특히 중국의 역할을 강조하며 “중국이 앞장서 역할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김 위원장과 시 주석간 의견 대립이 표면화했다. 김 위원장이 “북한은 앞으로 개혁ㆍ개방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으나, 시 주석은 ‘중요한 것은 그 얘기가 아니다’는 취지로 말하며 “비핵화부터 해야 한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외교 소식통은 “시 주석이 직접 김 위원장에게 ‘비핵화 전까지 아무 것도 도와줄 수 없다'고 선을 그은 셈이라 놀랐다”고 했다.
회담 직후인 지난달 10일 북한과 중국의 관영매체가 두 정상의 발언을 자세히 전달하지 않은 것도 이런 의견 대립 때문으로 분석된다. 당시 북중 매체는 대북제재에 대한 언급 없이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문제 해결을 위해 유관국(관련국)들의 노력을 촉구하는데 그쳤다. 대외적으로 미국을 자극하지 않기 위한 수위조절이었던 셈이다.
한편 김 위원장은 “회담에서 평화협정도 논의할 것”이라며 “정전협정을 빨리 평화협정으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청와대는 25일 “이번 회담에서 북미가 종전선언에 합의할 가능성이 있다”고 분위기를 띄웠지만 정작 북한은 정치적인 종전선언에 만족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하려면 중국의 역할과 참여가 필요하다”면서 중국 역할론을 재차 강조했다. 김 위원장이 회담장인 베트남 하노이로 향하면서 사흘간 전용열차로 중국 대륙을 관통하는 희대의 퍼포먼스를 벌인 배경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자리에서 김 위원장은 “북미회담 이후에는 남한을 방문할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어디까지나 우선순위는 중국에 맞춰졌던 것이다.
이에 시 주석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가 완화될 필요가 있다”고 호응했다. 이어 “중국은 비핵화 조치에 따른 역할을 하면서 평화협정 논의과정에도 반드시 참여할 것”이라고 화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김 위원장의 비공개 발언에 대해 중국의 외교 소식통은 “실제 회담장 발언과는 다소 뉘앙스가 다를지 모르지만 전후 상황을 감안하면 상당한 신빙성을 갖춘 내용”이라고 평가했다.
베이징=김광수 특파원 rollings@hankookilbo.com
신은별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