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성 측 “해외에선 건강식품으로 자유롭게 구매”
식약처 “마약성분 등 불순물 없는지 입증 어려워”
의료계 “의약품으로서의 효과, 안전성 검증이 먼저”
“이번에 수입이 허용된 대마성분 의약품 중 칸나비디올(CBD) 오일을 가공한 ‘에피디올렉스(뇌전증치료제)’ 100㎖ 한 병은 200만원이 넘습니다. 1년치 약값이 3,600만원이예요. 약품이 아니고 한 병에 16만~17만원 정도인 CBD오일을 사과즙처럼 쉽게 구입하도록 해달라고 했는데 정부가 엉뚱한 걸 풀어줬습니다.”(강성석 한국의료용대마합법화운동본부 대표)
12일부터 자가치료 목적에 한해 대마성분 의약품 수입이 허용된다. 대마 단속 48년만에 의약품으로 활용할 길이 열린 것이지만 뇌전증을 비롯해 일부 희귀·난치병 환자들 사이에서는 “아쉽다”는 반응도 나온다. 해외에서 뇌 질환 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았던 CBD오일(대마 오일)이 수입 대상에서 제외된 탓이다. CBD오일이란 대마에서 칸나비디올 성분을 추출해 만든 오일로 중국, 일본 등에서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집중력을 높여준다는 광고와 함께 건강보조식품으로 판매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대마성분 의약품의 판매를 허용한‘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이 개정된 이후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정비한 하위법령은 대마 추출물이라도 해외 의약품허가기관의 의약품 허가를 받은 경우에만 대마 성분 의약품으로 수입을 할 수 있도록 했다. 1일 기준으로는 모두 4종뿐이다. 보건당국은 가장 수요가 많은 에피디올렉스의 국내판매가를 100㎖ 병당 165만원으로 책정했다.
일부 뇌 질환 환자들은 식약처가 대마를 마약으로 보는 여론을 의식한 탓에 수입 허용기준을 지나치게 까다롭게 잡았다고 불만을 표시한다. 강성석 대표는 “남미와 캐나다 등지에선 의사 처방전만 있으면 영농기업이 생산한 CBD오일을 누구나 구입할 수 있다”며 “다양한 질병 치료를 위해 CBD오일을 건강기능식품처럼 수입해 팔도록 허가해 달라”고 요구했다. CBD오일에 대한 수요가 결코 적지않다는게 강 대표의 주장이다. 실제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와있는 CBD오일 판매 허용 관련 국민청원은 1일 현재 59건이다.
지난해 7월 올라온 청원에선 다발성 경화증을 5년째 앓고 있다는 환자가 “대마오일을 합법적으로 치료제로 쓰는 나라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불법이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다”면서 “하루빨리 대마를 치료약으로 쓸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외에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매 치료를 위해 CBD오일 사용을 합법화해 달라는 청원 등이 올라와있다.
하지만 보건당국과 의료계는 CBD오일의 효능과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강훈철 연세대 의대 소아신경과 교수는 대마 성분 의약품에 대한 일부 환자들의 관심과 기대가 과열됐다고 지적한다. 강 교수는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의약품으로 인정한 유일한 CBD오일인 에피디올렉스는일부 난치성 소아 뇌전증 환자의 발작 빈도를 절반이상 낮추는데 효과가 있는 것으로 연구됐다”면서도“하지만 이 제품 역시 효과가 제한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 약품이 아닌 CBD오일의 판매허용은 THC 등 불순물 우려가 있어 대마 합법화나 마찬가지”라며 “의약품으로 안전성과 효과가 검증되지 않은 제품의 수입허용은 안된다”고 잘라말했다.
우영택 식약처 마약정책과장은 “CBD오일은 제조과정에서 어떤 불순물이 섞여 있을지 알 수 없고 무엇보다 마약 효과를 내는 성분인 테트라하이드로칸나비놀(THC)가 완전히 제거됐는지도 입증하기 어렵다”며 수입불가방침을 밝혔다.
김민호 기자 km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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