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숨가쁜 기교를 자유자재로 구사한 연주자였다. 그의 경이로운 실력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얻은 것’이라는 소문까지 낳았다. 이 이야기를 뮤지컬로 옮긴 창작 뮤지컬 ‘파가니니’는 파가니니의 곡에 록음악을 버무려 객석을 압도하는 음악을 선사한다. 바이올린 연주가 극 전체의 절반에 달할 정도로 파가니니라는 인물을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공을 들였다. 파가니니 역을 맡은 배우는 연주를 ‘흉내’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악마의 연주’를 들려 준다.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바이올리니스트가 배우로 무대에 섰기에 가능했다.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뮤지컬 배우인 콘이 주인공. 콘은 최근 열린 공연 시연회에서 “사람들을 홀릴 만한 연주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매회 공연마다 팔이 부러질 것처럼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요즘 국내 뮤지컬에서는 노래와 연기는 기본이고 악기까지 소화하는 배우들이 무대에 오른다. 이른바 ‘액터뮤지션(배우를 뜻하는 액터와 뮤지션의 합성어)’들이다. 음악가를 주인공으로 한 뮤지컬에서 이들의 내공이 특히 빛난다.
액터뮤지션이라는 용어의 고향은 미국 브로드웨이다. ‘스위니 토드’ ‘컴퍼니’ 등을 재해석해 호평 받은 연출가 존 도일이 즐겨 썼다. 존 도일은 2006년 ‘스위니 토드’ 재공연에서 배우들에게 악기 연주를 맡기는 시도를 해 성공했다. 국내에서는 뮤지컬 ‘모비딕’(2011)이 시초로 꼽힌다.
요즘 국내 트렌드는 음악이 주요 소재인 뮤지컬에 액터뮤지션이 출연하는 것이다. ‘연주도 하는 배우’가 아니라 ‘연기도 하는 연주자’가 무대에 선다. 영화, 드라마에서는 대역 배우의 악기 연주 장면을 따로 촬영해 편집할 수 있지만, 공연에선 불가능하다. 대역 배우를 쓸 수 없는 공연계가 액터뮤지션을 통해 공연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는 것이다. 최근에는 뮤지컬 ‘광염소나타’, ‘머더포투’, ‘루드윅: 더 베토벤’ 등에서 클래식 피아노를 전공한 연주자가 배역을 맡아 연기와 연주를 병행했다.
배우가 직접 연주를 하면 관객의 작품 몰입도가 올라간다. ‘파가니니’ 제작사 HJ컬쳐의 한승원 대표는 “실존 인물을 담아내기 위해 ‘진짜’라는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며 “무대 위 연주를 직접 듣는 순간, 관객들이 파가니니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박병성 뮤지컬평론가는 “실제 예술가들을 무대에 올려 뛰어난 예술가들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을 충족시켜주는 작품들이 하나의 경향성을 이루고 있다”며 “악기 연주뿐만 아니라 발레리나 김주원, 소프라노 임선혜가 뮤지컬 ‘팬텀’에서 발레리나와 소프라노를 맡은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분석했다.
액터뮤지션 캐스팅이 쉽지 않다는 것은 한계다. ‘파가니니’ 역할 오디션에 지원한 사람은 5명도 채 안 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승원 대표는 “‘빌리 엘리어트’가 아역 배우들에게 발레를 교육해 완성해 가듯이, 앞으로 연주자를 미리 섭외하고 연기 수업을 병행하면 작품 완성도가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한다”며 “액터뮤지션은 뮤지컬 관객에게 새로움을 주기 위해 꼭 필요한 방향”이라고 말했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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