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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할 오늘] 프랜시스 퍼킨스(3.4)

입력
2019.03.04 04:40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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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딜 정책의 실질적인 주역인 프린시스 퍼킨스가 1933년 오늘 노동부장관이 됐다.
뉴딜 정책의 실질적인 주역인 프린시스 퍼킨스가 1933년 오늘 노동부장관이 됐다.

미국 워싱턴D.C 노동부 본부 건물은 ‘프랜시스 퍼킨스 빌딩’이라 불린다. 미국 첫 여성 장관이기도 한 프랜시스 퍼킨스(Frances Perkins, 1880~1965) 전 장관을 기리는 의미로, 1980년 저렇게 명명됐다. 그는 1933년 3월 4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뉴딜 정부’의 노동부장관에 임명돼 트루먼 정권이 출범한 직후인 45년 6월까지 만 12년의 역대 최장 기간을 장관으로 재직하며 최저임금제와 근로시간 상한제, 아동노동 금지, 실업 연금제 등 노동복지의 주요 정책들을 입법했고, 뉴딜 정책의 근간이자 공공근로의 기원이라 할 만한 ‘청년 근로단(Civil Conservation Corps, 1933~1942)’과 ‘여성사업단(She-She-She Camp)’ 등을 조직ㆍ운영했다. 한 마디로 그는 정부기관으로서 노동부가 왜 필요하며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노동부가 가장 필요했던 시기에 실증적으로 보여준 관료였다.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의 꽤 잘 사는 문구업자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여성 명문 사립학교인 마운트 홀리오크 칼리지에서 화학과 물리학을 전공했다. 재학 당시부터 여성 참정권운동인 서프라제트 등 진보 정치운동에 가담했다고 한다. 1902년 졸업 후 교사로 일했고, 펜실베이니아대에서 경제학을, 콜럼비아대에서 정치학(석사)을 공부했다. 그는 뉴욕소비자연맹(NYCL) 회장으로서 노동 인권과 근로환경 개선 운동에 힘을 쏟았고, 아델피 칼리지 사회학과 교수로도 일했다.

1911년 3월 뉴욕 그리니치빌리지의 트라이앵글 의류공장 화재사건이 일어났다. 화재 당시 건물 8~10층 공장에는 대다수 이민자인 14~23세 여성 노동자 수백 명이 일하고 있었다. 게으름을 방지하려던 사업주의 지시로 작업장 출입구가 잠긴 상태였다. 그 화재로 146명(여성 123명)이 숨졌다. 퍼킨스는 이후 노동 인권 사업에 전면적으로 투신했다. 뉴욕주 노동위원회를 거쳐 뉴딜의 관료로 활약하는 동안, 그는 탁월한 조정 능력과 저돌적인 추진력으로, 여성으로서 겪어야 했던 숱한 편견과 난관을 돌파해냈다.

정신질환을 앓은 남편과 딸을 보살폈고, 만년에는 ‘주니어 리그’ 설립자인 메리 럼지(1881~1934)와 해로했다. 그는 양성애자였거나 동성애자였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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