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기 폐조직, 폐혈관보다 빨리 자라는 탓
가슴통증으로 쓰러진 환자의 가슴에 볼펜을 꽂아 응급처치하는 장면을 드라마나 영화에서 종종 볼 수 있다는데 ‘기흉’을 모티브한 것이다.
기흉은 폐에 생긴 기포(공기주머니)가 터지면서 흉막에 공기가 새어 들어가 그 압력으로 폐의 일부분이 쪼그라드는 병이다. 폐 안에 들어 있던 공기가 폐 밖(흉막강)으로 새어 나와 폐를 수축시키는 것이다. 기흉이 생기면 호흡곤란뿐만 아니라 심하면 심장까지 압박해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17년 기흉으로 진단받은 환자 중 84.9%가 남성이고, 10대가 30.8%, 20대가 18.6%로 10대와 20대 발병률이 전체 환자의 50%나 된다. 10~20대 마른 체형의 남성에게 잘 생긴다.
이는 청소년기에 빠르게 성장하는 과정에서 폐 조직이 폐혈관보다 빨리 자라 폐 상부의 혈관 공급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지는데, 이로 인해 종종 기포가 생기기 때문으로 보인다. 여성보다 남성 환자가 많은 건 이런 현상이 성장기 남성에게 집중되기 때문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젊은이에게 많은 1차성ㆍ50대 이후에 나타나는 2차성 기흉
폐는 수많은 매우 작은 풍선들이 모이고 서로 연결돼 큰 풍선을 만들고 있는 장기로 볼 수 있다. 기흉은 이런 작은 풍선들 중 일부가 터져 폐 안에 있는 공기가 새고, 이로 인해 폐는 쪼그라들고, 새어 나온 공기는 가슴 안에 고여 생긴다.
기흉이 생기면 가슴이 아프기도 하고 숨도 차게 된다. 드물게 새어 나온 공기 압력이 갑자기 커져 심장이나 혈관을 누르게 되는 ‘긴장성 기흉’이라는 응급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기흉은 크게 1차성과 2차성 기흉으로 나눌 수 있다. 1차성 기흉은 10대 후반이나 20대 초반 젊은 남자에게서 잘 생기는데, 환자는 보통 키가 크고 깡마른 특징이 있다. 1차성 기흉은 폐에 특별한 질환 없이 생겨 ‘자연 기흉’이라고도 한다. 폐 표면에 큰 공기주머니가 볼록 튀어나온 ‘기낭’이라는 병변이 먼저 생긴다. 기낭이 터지면 기흉이 발생한다. 기낭이 생기는 이유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담배를 피우면 기낭도 잘 생기고, 기흉도 늘어난다.
2차성 기흉은 폐에 특정 질환을 오래 앓은 사람에게서 2차적으로 나타난다. 50대 이후, 특히 60~70대에 잘 생긴다. 원인 폐질환으로는 만성폐쇄성폐질환(COPD)이나 폐기종이 가장 많다. 결핵, 악성 종양, 폐섬유증, 폐렴도 기흉을 일으킬 수 있다.
◇가슴통증과 호흡곤란 증상이 대부분
증상은 가슴통증이 가장 흔하다. 가슴통증은 환자마다 호소하는 표현이 다 다르지만 보통 숨쉴 때마다 가슴 안쪽이 뻐근해진다.
두 번째로 많은 증상은 호흡곤란이다. 1차성 기흉이 생긴 젊은 환자는 호흡곤란 증상이 그리 심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하지만 긴장성 기흉이 발생했거나, 2차성 기흉 환자는 호흡곤란 증상이 통증보다 더 심할 수 있다. 이밖에 기침ㆍ가래가 갑자기 늘고, 운동할 때만 통증이나 호흡곤란이 심해지기도 한다.
◇흉강경 수술, 통증 적고 회복 빨라
기흉은 흉부 X선 검사로 쉽게 진단할 수 있다. 여기에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 검사를 하면 기포 크기ㆍ위치ㆍ개수 등을 정확히 알 수 있다.
폐에 생긴 구멍이 작고, 폐 밖으로 새나온 공기가 적을 때에는 안정을 취하는 것만으로도 치료될 수 있다. 이때 코나 입으로 산소를 투여하면 더 빨리 호전될 수 있다.
하지만 새어 나온 공기량이 많아 폐가 정상보다 20% 이상 쪼그라들었다면 흉관이란 새끼손가락 굵기 정도의 긴 튜브를 가슴 안쪽으로 넣어 새어 나온 공기를 몸 바깥으로 빼야 한다. 기흉은 재발이 잦은데, 폐 표면에 생긴 큰 공기주머니(기낭)를 제거하지 않으면 30~50%의 환자는 재발한다. 재발하면 기낭제거수술을 받아야 한다. 김영두 가톨릭대 부천성모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기흉 수술은 대부분 흉강경 수술로 하는데, 1시간 정도 걸리는 비교적 안전한 수술인데다 이전 수술법인 개흉술보다 통증이 적고 회복이 빠르다”고 했다.
흉관을 넣었는데도 폐가 펴지지 않고 4일 이상 공기가 계속 샐 때나, 기흉이 양쪽 가슴에 동시에 발생하거나, 긴장성 기흉이 생기면 역시 수술을 해야 한다.
수술해도 3~5% 정도에서 재발한다. 원인으로 기낭이 수술 후 새로 생기거나, 수술 부위 바로 옆에서 공기가 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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