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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외계에서 온 문학? 장르 위계 허물고 문학상도 줄 수 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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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가 외계에서 온 문학? 장르 위계 허물고 문학상도 줄 수 있어야”

입력
2019.02.25 04:40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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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내 첫 SF 평론집 펴낸 복도훈 

[저작권 한국일보]10년간의 SF평론을 엮은 ‘SF는 공상하지 않는다’를 낸 복도훈 평론가 역시 최근 들어 독자들의 SF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저작권 한국일보]10년간의 SF평론을 엮은 ‘SF는 공상하지 않는다’를 낸 복도훈 평론가 역시 최근 들어 독자들의 SF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어난 것을 체감한다고 했다. 홍윤기 인턴기자

“인간과 E.T가 손가락을 마주 댔듯 본격문학과 SF도 만나야 해요. 타자와 만나지 않으면 저 존재가 선한지 악한지를 판단하기만 할 뿐 제대로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평론집 ‘SF는 공상하지 않는다’를 낸 문학평론가 복도훈 서울과학기술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SF와 본격문학의 교감의 필요성을 SF 영화의 한 장면에 빗대 역설했다. 지구에 불시착한 외계생명체 E.T와 지구인 소년의 손가락이 맞닿는 것으로 낯선 존재와의 조우를 표현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영화 ‘E.T’(1982) 말이다.

‘공상하지 않는다’는 제목에서부터 그간 ‘공상’ 과학소설이라 오인돼 온 SF에 대한 오해를 풀어보겠다는 포부가 엿보인다. 책 띠지에는 ‘국내 최초 SF평론집’이라는 설명도 붙었다. “’최초’라는 단어에 불편해하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해설서나 연구서, 번역서는 조금 있었으니까요. 현장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작품 비평을 하나로 모아 낸 건 확실히 처음입니다.”

책에는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복 교수가 발표한 SF 평론들이 담겼다. 복거일부터 듀나, 배명훈부터 김보영, 박민규부터 윤이형까지. 한국 SF의 중요한 이름과 면면을 종횡무진한다. 복 교수의 전공은 이른바 ‘본격 문학’이었다. 2005년 데뷔도 본격 문학으로 했다. SF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어쩌다가”였다고 한다.

“2008년 우연히 청탁을 받아 복거일과 듀나의 SF에 관한 글을 쓰게 됐고, 국내외 SF를 찾아 읽다 보니 갈수록 더 많은 매력을 느끼게 됐죠. 그때만 해도 SF는 문학으로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물론 SF쪽에서도 자생적으로 키워 온 팬덤 문화가 있다 보니 본격 문학의 밑으로 들어가서 ‘식민지화’ 되는 것을 거부했죠. 비유하자면, ‘외계 행성’이 서로를 바라보듯 했달까요. 그러다보니 저는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인정을 못 받은 채로 10년을 썼습니다(웃음).”

복도훈 평론가는 본격문학과 SF문학과의 교감의 필요성을 스티븐스필버그의 SF의 영화 ‘E.T’에서 지구인 소년과 외계인 생명체의 ‘손가락 맞닿음’을 빗대어 역설했다.
복도훈 평론가는 본격문학과 SF문학과의 교감의 필요성을 스티븐스필버그의 SF의 영화 ‘E.T’에서 지구인 소년과 외계인 생명체의 ‘손가락 맞닿음’을 빗대어 역설했다.

복 교수는 근래 들어 SF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이 커진 것을 심상찮게 느낀다. “최근 출시된 ‘토피아 단편집’이라는 국내 작가들의 SF 작품집이 인터넷 서점 사이트의 국내소설 10위 안에 들었어요. SF 장르가, 그것도 외국 작품이 아닌 국내 작품이 10위권 안에 든 건 아마 처음일 거예요. 체감하기에, 지난해부터 올해까지 SF에 대한 관심이 최정점에 이른 것 같아요. 이제 정말 독자들이 SF를 받아들이고 향유할 수 있는 때가 온 거죠.”

그런 변화의 계기는 무엇일까. “무엇보다 문학을 둘러싼 매체 환경이 변했어요. 국내 SF 자체가 ‘하이텔’이라는 옛 PC통신에서 탄생한 장르인데, 지금의 SF 독자와 작가들은 대부분 1990년생 정도예요. 완전한 디지털세대인 그들에게는 SF가 자연스러운 거죠. 영화나 드라마에서 좀비 같은 낯선 존재가 자주 등장하기 시작한 것도 영향을 끼쳤을 거고요.”

독자의 수요는 늘었지만, SF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여전하다. 대표적인 것이 SF(Science Fiction)를 여전히 ‘공상과학소설’로 번역하는 관행이라고 복 교수는 지적했다. “공상이라는 단어 자체를 없애자는 게 아니에요. 다만 지금의 공상이란 단어에 덧붙여진 헛되고, 근거 없고, 황당한 상상이라는 비하의 의미를 걷어내야 한다는 거죠.”

2019년은 필립 K.딕의 SF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 되는 해다.
2019년은 필립 K.딕의 SF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한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 되는 해다.

복 교수가 볼 때 SF는 새로운 시대, 새로운 문학의 흐름이다. “‘좋은 작품’과 ‘좋지 않은 작품’만 구별될 뿐 이제 장르의 위계를 설정하는 건 의미가 없어요. 결국 우리는 다 ‘문학’을 하고 있는 거니까 장르적인 차이를 인정하고 만나야 돼요. 팔짱 끼지 말고, 만나서 난상토론도 해보고, 비평도 쏟아내고. 대학 등 아카데미에서도 SF를 더 가르치고, 문학상도 줄 수 있어야죠. SF작품이 한국일보 문학상을 받지 말란 법도 없는 거예요.”

올해는 필립 K. 딕의 대표적인 디스토피아 소설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를 원작으로 만든 영화 ‘블레이드 러너’의 배경이 되는 해다. SF의 새로운 원년으로 삼기에 딱 적당하다. “수포자(수학포기자), 과포자(과학포기자)도 얼마든지 즐겁게 읽을 수 있는 게 SF예요. 50대 여성들을 대상으로 SF를 강의하고 추천해도 너무 재밌다고들 하세요. SF가 계급과 젠더에 있어 가장 전복적인 상상력을 가진 장르이기도 하고요. 우선 ‘블레이드러너’나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SF영화를 본 뒤에 원작을 찾아 읽어보시고, 그 다음에 듀나, 배명훈 같은 국내 작가를 읽어보시고… 아! 최근에 나온 토피아 단편집과 아작 출판사의 단편집도 놓치면 안되고요…” SF작품을 추천해달라는 질문에 복 교수는 밤이라도 샐 것 같았다.

한소범 기자 beo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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