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청업체 근로자들에게 ‘죽음의 공장’으로 악명이 높은 현대제철 당진공장에서 또다시 50대 하청업체 노동자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사망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업장은 사내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간 차별이 심한 것으로 드러나 하청 노동자의 처우와 작업 환경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21일 경찰과 현대제철 등에 따르면 전날 오후 5시 30분쯤 당진시 송악읍 현대제철 당진공장 철광석 트랜스퍼타워(환승탑)에서 이모(50)씨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것을 동료들이 발견해 119에 신고했다.
이씨는 지난해 12월 11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작업 중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숨진 김용균씨와 같은 하청업체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다.
이씨를 처음 발견한 동료는 “이씨가 컨베이어벨트 정비 작업 중 새 볼트를 가지러 공구창고에 갔는데 보이지 않아 찾아보니 옆 라인 컨베이어벨트에서 숨진 채 쓰러져 있었다”고 말했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의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사망사고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부터 12년 동안 안전사고로 36명이 숨졌고, 이 가운데 27명이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다.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죽음의 공장’으로 불리는 이유다.
사고가 잇따르자 고용노동부는 2014년 현대제철 특별관리감독을 벌여 1,100여건에 이르는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을 적발했다. 노동부는 2017년에도 특별근로감독에 준하는 수준의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사망사고의 주요인으로는 하청이 지목되고 있다. 하청업체가 저가로 일감을 따내다 보니 인력과 인건비를 줄일 수밖에 없고, 이는 안전조치 소홀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제철 당진공장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달 시정권고를 내릴 정도로 원청 노동자와 하청 노동자 간 차별이 심각한 사업장이다. 하청 노동자에겐 탈의실 비품을 제공하지 않고, 주차공간이 없다며 차를 가져오지 말라고 했다. 같은 일을 하면서도 평균 급여는 원청 노동자의 60% 수준만 받았다. 차별은 명절 귀향비와 의료비 등에서도 확인됐다. 인권위는 이에 현대제철에 “불합리한 차별 시정을 위한 적정 도급비를 보장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달리 취급하지 말라”고 요구했다.
경찰과 노동당국은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 중이다. 안전규정 준수 여부 등 안전관리상 문제점도 들여다 보고 있다.
대전고용노동청 천안지청 관계자는 “현대제철과 컨베이어벨트 수리 업체의 관계를 파악하고, 원ㆍ하청 계약관계가 성립됐을 때 원청인 현대제철의 책임이 적절했는지 꼼꼼하게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대제철은 이씨 사망사고와 관련 원청의 책임 강화를 골자로 지난해 말 통과한 개정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은 적용 받지 않는다. 공포 1년 후 법이 시행되기 때문이다.
청년비정규직 고 김용균 시민대책위는 성명을 통해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담보로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을 처벌하고, 죽음의 외주화를 멈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진=최두선 기자 balanced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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