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호주 연구진 “소형포유류 사냥 시기 2만년 이상 앞당겨야”
수 만 년 전, 초기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의 식탁에는 무엇이 올라갔을까.
우선 떠오르는 건 매머드와 같은 대형 포유동물의 고기다. 인류 진화를 다룬 박물관에서도 창을 든 호모 사피엔스가 무리 지어 거대 동물을 사냥하는 그림을 흔히 볼 수 있다. 숲에서 살던 고대 인류가 아프리카 초원에 적응하고,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벗어나 세계 곳곳에 정착할 수 있게 된 것도 중ㆍ대형 동물 사냥 기술이 점차 발달했기 때문이란 해석이 있다.
조개와 같은 해산물도 호모 사피엔스의 식탁에 올랐다. 일각에선 인류가 멀리까지 이주하면서 계속 진화할 수 있었던 배경으로 해산물을 꼽는다. 아프리카에서 나온 인류의 여정이 주로 해안선을 따라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조개 등 해산물은 비교적 쉽게 잡을 수 있다. 단백질도 풍부하다. 아프리카 대탈주에 나선 호모 사피엔스는 이를 통해 눈 덮인 극지방까지 접수할 수 있었다.
그런 호모 사피엔스에게도 예외는 있었다. 열대 우림이다. 과학계에선 몸무게가 40㎏ 이상인 거대 포유동물이 없다는 이유 등을 들며 호모 사피엔스가 열대우림에 정착해 살기 어려웠을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와 호주 그리피스대, 영국 스털링대 등이 참여한 국제 공동연구진은 여기에 의문을 제기했다. 이들은 지난 19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관련 논문을 발표하면서 “약 4만5,000년 전 스리랑카 열대 우림에서 살던 호모 사피엔스가 나무에 사는 원숭이와 다람쥐를 주로 사냥했다”고 주장했다. 호모 사피엔스가 열대 우림에 무리 지어 살았고, 이들은 중대형 포유동물이 아닌 소형 포유류를 먹고 살았다는 얘기다. 기존에 알려졌던 호모 사피엔스의 소형 동물 사냥시기(약 2만 년 전)도 훨씬 앞당겨졌다. 연구진은 “이런 특성은 전 세계로 뻗어나간 호모 사피엔스가 중대형 포유동물이 없는 곳에서도 빠르게 적응하는데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동남아시아에 위치한 스리랑카 칼루타라의 파 히엔(Fa Hien) 동굴에서 2009~2012년 발굴한 동물 뼈 화석 1만4,485점을 분석했다. 그 중에 구분이 가능한 7,622개의 화석을 개구리, 도마뱀, 다람쥐, 원숭이, 멧돼지 등 동물ㆍ시대별로 분류했다. 이곳에선 약 4만5,000년 전부터 비교적 최근인 4,000년 전까지 호모 사피엔스가 살았음을 보여주는 조개 공예, 숯, 돌로 된 도구 등이 함께 발견됐다.
그 결과, 홍적세 후기(4만8,000년~3만4,000년 전)와 홍적세 말기(1만3,000~1만2,000년 전)로 분류된 동물 뼈의 76.3%와 84.7%가 각각 원숭이와 다람쥐의 것으로 확인됐다. 열대우림에 정착한 호모 사피엔스가 원숭이와 다람쥐를 주식으로 삼았다는 얘기다.
원숭이 뼈의 비율은 홍적세 후기 48.7%를 기록한 뒤 홍적세 말기와 홀로세 초기(약 8,700년~8,000년 전)에도 비슷한 비율을 보이다가 홀로세 중기(약 6,000~4,000년 전)엔 61.1%로 뛰었다. 현재 스리랑카에는 토르마카크, 자주빛얼굴랑구르, 술회색랑구르 등 긴꼬리원숭이과에 속하는 원숭이들이 살고 있다. 토르마카크 성체의 몸무게는 3~6㎏, 자주빛얼굴랑구르는 3~9㎏다. 반면 멧돼지, 사슴 등 발굽이 있는 중대형 포유류의 뼈는 홍적세 후기부터 홀로세 중기까지 이어지는 긴 시간 동안 전체의 4%에도 못 미쳤다.
특히 홍적세 후기의 원숭이 등 동물 뼈 36점은 표면이 가공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사냥한 동물 뼈로 도구를 만들어 다시 사냥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동남아시아의 사냥꾼들은 화살이나 바람총으로 동물을 잡는데, 표면이 가공된 동물 뼈의 크기나 모양이 이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특정 다람쥐 뼈는 바람총의 화살촉을 만든 것처럼 특정 부분이 얇고 날카롭게 파여 있다. 지름이 1㎝인 원숭이 뼈는 바람을 불어 화살촉을 날릴 수 있게 중간에 구멍이 뚫려 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결과는 호모 사피엔스가 지구를 정복하는데 다양한 생존전략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변태섭기자 liberta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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