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득주도성장의 배신]
작년 4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 소득 17.7% 급감, 통계작성 이래 최악
상위 20% 가구는 소득 10% 늘어… “소득주도성장 궤도 수정” 목청 커져
지난해 국내 저소득층의 가계소득이 1ㆍ2ㆍ3ㆍ4분기 모두 전년보다 크게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소득 수준 상ㆍ하위층 사이 분배 격차는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고용참사’로 표현되는 지난해 일자리 쇼크가 연쇄작용을 일으켜 사회적인 소득과 분배 참사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제 주체의 소득을 높여 성장을 이끌겠다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이 기대와 사뭇 다른 성적표로 확인되면서, 더 늦기 전에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지고 있다.
◇부유층 소득만 올린 소득주도성장
21일 통계청이 발표한 ‘2018년 4분기 소득부문 가계동향조사’에 따르면, 작년 4분기(10~12월) 소득 하위 20% 계층(1분위)의 가구당 소득은 월 평균 123만8,000원으로 1년 전보다 17.7% 감소했다. 이는 매년 4분기를 기준으로 2003년 통계 작성이 시작된 이후 가장 큰 감소폭이다. 1분위 가구의 소득은 지난해 1분기 -8.0%, 2분기 -7.6%, 3분기 -7.0% 이어 4개 분기 연속 큰 폭의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여기엔 특히 근로소득 감소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1분위 가구 근로소득은 무려 36.8%나 감소한 43만500원에 그쳤다. 역시 2003년 이래 최대 감소폭이다. 주로 자영업자의 노동소득을 뜻하는 1분위 가구 사업소득도 8.6% 감소한 월 20만7,300원에 그쳤다. 세금 등을 제하고 실제로 쓸 수 있는 월 평균 처분가능소득에서도 1분위 가구는 1년 전보다 19.5% 줄어든 98만8,200원을 손에 쥐었다.
이는 우리 사회 가난한 사람들이 더 가난해졌음을 의미한다. 최저임금 인상과 아동수당 지급, 노인연금 확대 등 정책을 통해 저소득층 소득을 높여 소비 진작과 경기 활성화를 이루겠다는 취지의 소득주도성장이 지난해 빈곤층에게는 오히려 정반대의 결과를 낳은 셈이기도 하다.
반면 고소득층은 더 잘 살게 됐다. 작년 4분기 소득 최상위 20%(5분위) 가구의 소득은 월 평균 932만4,300원으로 10.4% 증가했다. 5분위 가구의 근로소득(월 평균 688만5,600원)도 14.2% 뛰었다. 이들의 월 평균 처분가능소득 역시 1년 전보다 8.6% 증가한 726만500원에 달했다.
이처럼 소득 하위 가구의 소득은 더 줄고, 상위 가구 소득은 높아지면서 소득분배 지표 역시 사상 최악을 기록했다. 상위 20%의 월 처분 가능소득을 하위 20%의 처분 가능소득으로 나눈 ‘소득 5분위 배율’은 작년 4분기 5.47배로 집계됐다. 1년 전 기록했던 4.61배보다 0.86포인트가 증가했고, 4분기 기준으로 역대 최대치다. 이 수치는 숫자가 높을수록 소득 양극화가 심하다는 걸 의미한다.
분기 기준으로 소득분배 격차가 가장 높았던 건 지난해 1분기(5.95배)였다. 범위를 넓혀 봐도 차하위 계층인 2분위(소득 하위 20%~40%) 가구의 소득은 1년 전보다 4.8% 감소한 반면, 차상위인 4분위(소득 상위 20~40%) 가구의 소득은 같은 기간 4.8% 증가했다. 최상, 최하 계층뿐 아니라 전반적으로도 양극화가 심각해지고 있다는 신호다.
◇자영업자도 소득감소 직격탄
극빈층보다 주로 차하위 계층에 다수 분포한 영세 자영업자의 소득(사업소득)도 급감했다. 지난해 4분기 2분위 가구의 사업소득은 약 53만원으로 1년 전보다 18.7% 줄었다. 2003년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이다. 하위 40~60%(3분위) 또한 사업소득이 7.0% 감소해 4분기 기준으론 2014년(-12.4%) 이후 5년 만에 가장 많이 쪼그라들었다.
이는 내수침체, 최저임금 인상 등의 영향으로 영세 자영업자의 폐업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작년 4분기 ‘1인 자영업자’는 1년 전보다 8만7,000명 감소했다. 이들이 근로자로 취업했거나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고용원 있는 자영업자’로 이동한 결과일 가능성도 있지만, 통계청은 폐업에 무게를 두고 있다.
실제 같은 기간 전체 2분위 가구에서 자영업 가구(가구주가 자영업자인 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5.1%포인트(24.4→19.3%)나 줄어든 반면, 무직 가구 비중은 1.9%포인트(17.3→19.2%) 상승했다. 또 1분위 내 자영업 가구 비중도 2.8%포인트(13.1→15.9%) 올랐다.
당초 2분위에 속해 있던 자영업자가 폐업을 하고 무직자가 됐거나, 가게는 유지하고 있지만 벌이는 1분위 수준으로 추락했다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근본 원인은 일자리 감소
소득 양극화를 더 부채질한 건 결국 일자리의 차이였다. 2017년 4분기 각각 1분위 0.81명, 2분위 1.31명이던 가구당 취업자 수는 작년 4분기 각각 0.64명, 1.21명으로 더 낮아졌다. 가구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 그만큼 줄었다는 의미다.
이에 반해 4분위의 가구당 취업자 수는 같은 기간 1.77명에서 1.79명으로, 5분위는 2.02명에서 2.07명으로 오히려 늘었다. 1분위 가구가 주로 차지하는 임시직이 2017년 4분기에 비해 작년 4분기에 17만명 감소한 반면, 4ㆍ5분위 가구원이 주로 구성하는 상용직은 같은 기간 34만2,000명 증가한 것도 계층간 일자리 사정의 차이를 말해준다.
지난해 저소득층 소득 감소의 주요 원인이 된 1분위 가구 근로소득 감소, 자영업자 사업소득 감소는 결국 제대로 된 일자리를 찾거나 자영업에서 근로소득자로 전직할 기회가 이들에게 막혀있다는 의미다. 저소득층은 질 낮은 일자리마저 잃고 있는 반면, 고소득층은 양질의 일자리를 오히려 늘려가는 일자리의 ‘부익부 빈익빈’이 소득분배 참사로 연결되고 있는 셈이다.
민간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계속 마련되지 않으면 저소득층의 소득 확대, 사회적인 소득 양극화 개선은 요원하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특히 최근 일자리 증가의 큰 걸림돌로 꼽히는 최저임금 인상 정책에는 근본적인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는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소득을 보전하는 방법은 보조적 수단에 머물 뿐 근본 대책이 아니다”며 “정부가 추진하는 최저임금 결정방식 이원화보다 민간에서 요구하는 산업별, 연령별 차등 적용 등 보다 실질적인 일자리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공허한 정부 대책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긴급 관계장관 회의를 갖고 “소득통계 결과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며 이를 심기일전의 계기로 삼아 분배 상황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저소득층 대상 정책 집행에 더욱 매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작년 4분기 1분위의 기록적인 소득감소와 분배악화가 고령가구 증가 등 구조적인 요인과 고용부진이 맞물린 영향으로 보고 있다. 아울러 비교 대상이었던 2017년 4분기에 상대적으로 양호했던 소득여건에 따른 ‘기저효과’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민간일자리 창출을 위해 경제활력 제고, 규제개혁, 산업혁신을 속도감 있게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소득분배 악화 추세를 개선할 새 대책은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정부는 이날 △올해 23조5,000억원에 달하는 일자리 예산의 차질 없는 집행 △4월로 예정된 기초연금 인상(25만원→30만원) △노인일자리 사업 확대(작년 51만개→올해 61만개) △실업급여 인상 △기초생활보호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근로장려금(EITC) 확대 등 기존 일자리ㆍ저소득층 지원 대책에서 발표했던 정책들을 재차 강조했다. 그간의 단기 일자리 대책과 복지 대책 등에 세금을 더 투입해 소득 증가 효과가 나오길 기대해 보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재정을 투입하는 소득보전 조치에는 한계가 명확하다고 지적한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지난해 소득분배 악화 통계는 최저임금의 대상이 되는 저소득층은 오히려 일자리를 잃고, 안정적 직장을 가진 근로자의 소득만 높아지는 역설적 상황을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그는 “이는 저소득 계층을 위한 정부 정책이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지금까지 추진했던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전면적인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종=이대혁 기자 selected@hankookilbo.com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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