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이 그룹 지주사인 SK㈜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난다. 경영진 감시 역할을 하는 이사회 독립성을 보장함으로써 경영과 감시를 분리, 투명경영을 보다 강화하겠다는 의중이 담긴 결정으로 해석된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최 회장은 다음달 임기 만료를 앞두고 2016년부터 대표이사와 겸직해 오던 SK㈜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기로 했다. SK㈜는 다음달 예정된 정기주주총회에서 이를 의결할 예정이다. 2014년 모든 계열사의 등기임원직에서 물러났던 최 회장은 2016년 사내이사로 복귀한 뒤 3년간 대표이사와 의장을 겸임해왔다. SK이노베이션 등 대부분 계열사에선 미등기임원을 겸하고 있지만 유일하게 SK㈜에서만 등기임원으로 이사회 의장직을 맡아 왔다.
최 회장은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대신 대표이사직은 유지하며 경영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SK㈜는 최 회장과 장동현 사장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후임 이사회 의장으로는 이번 달로 임기가 끝나는 염재호 고려대 총장이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재계에서는 최 회장의 이사회 의장직 용퇴 결정이 SK가 지속적으로 화두로 삼고 있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경영 철학’에 따른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은 지난달 열린 그룹 신년회에서 “성장과 안정이 지속적이라면 매출과 영업이익을 높이는 것보다 구성원의 행복과 성숙도 있는 공동체를 잘 만들어 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지배구조를 변화시켜 사회적 가치를 높이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됐다.
실제 경영진을 대표하는 게 대표이사라면 이들을 감시하는 역할을 하는 게 이사회 의장인데, 상당수 글로벌 기업이 주주 신뢰를 높이는 취지에서 이들을 분리 운영하고 있는 반면 국내 기업은 이 둘을 겸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기업지배구조원칙(CGP)을 통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역할을 분리하는 것을 모범사례로 규정하고 있으며, 스웨덴 등 일부 국가에서는 아예 둘의 분리를 의무사항으로 정해놓고 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지난해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의 분리를 결정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경영과 감시를 분리함으로써 투명경영을 강화하겠다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국내 기업들의 전반적인 추세이기도 하다”며 “삼성에 이어 SK까지 대기업이 한 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는 점에서 향후 경영진과 이사회를 분리하는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와 함께 SK그룹은 현재 사내이사가 맡고 있던 주요 계열사 이사회 의장도 모두 교체할 것으로 보인다. 3월 주총에서 사외이사 중 한 명에게 이사회 의장을 맡기는 체제로 가는 방안이 유력하다. SK하이닉스의 경우 박성욱 대표이사 부회장이 이사회 의장을 겸하고 있지만 박 부회장은 앞으로 대표이사직에 전념하는 대신 사외이사 중 한 명에게 의장직을 넘기게 될 전망이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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