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중 대주교 3·1운동 100주년 기념 담화
한국 천주교계가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일제 때 민족의 고통에 침묵한 과거사를 사과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는 20일 발표한 3·1운동 100주년 기념 담화에서 “백 년 전에 많은 종교인이 독립운동에 나선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한다"며 "그러나 그 역사의 현장에서 천주교회가 제 구실을 다 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천주교회는 시대의 징표를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 채 민족의 고통과 아픔을 외면하고 저버린 잘못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성찰하며 반성한다"고도 했다. 한국 천주교계가 과거사에 대해 공개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3·1운동은 종교계가 주도했지만, 천주교는 역할을 하지 않았다. 당시 민족대표 33명은 천도교(15명), 기독교(16명), 불교(2명) 등으로, 천주교 인사는 없었다.
김 대주교는 "조선 후기 한 세기에 걸친 혹독한 박해를 겪고서 신앙의 자유를 얻은 한국 천주교회는 어렵고 힘든 시기를 보냈다"고 말했다. 이어 "그런 까닭에 외국 선교사들로 이뤄진 한국 천주교 지도부는 교회를 보존하고 신자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정교분리 정책을 내세워 해방을 선포해야 할 사명을 외면하고 신자들의 독립운동 참여를 금지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또 "나중에는 신자들에게 일제의 침략 전쟁에 참여할 것과 신사 참배를 권고하기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김 대주교는 "당시 교회 지도자들의 침묵과 제재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양심과 정의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이름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천주교인들도 기억하고자 한다"면서 "한국 천주교회의 지난 잘못을 덮으려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아픔과 좌절에도 쓰러지지 않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던 그들을 본받고 따르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주교는 한반도 평화 기여 의지를 확인했다. 그는 "우리는 3·1 운동의 정신을 이어받아 서로의 다름이 차별과 배척이 아닌 대화의 출발점이 되는 세상, 전쟁의 부재를 넘어 진정한 참회와 용서로써 화해를 이루는 세상을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천주교회는 과거를 반성하고 신앙의 선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후손이 되어 한반도에 참 평화를 이루겠다”며 “더 나아가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 이바지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끊임없이 노력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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