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20년간 들인 공이 마침내 결실을 보게 될까. 최근 베네수엘라의 ‘한 나라 두 대통령’ 사태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에게 보이는 미국의 강경한 태도가 사실 수십 년간 진행된 ‘정권 교체 작업’의 일환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임시 대통령을 자처해 마두로 대통령을 위협하고 있는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도 사실 ‘미국이 키운’ 인물이라는 얘기다.
미국 워싱턴포스트(WP)는 19일(현지시간) ‘미국이 베네수엘라 야권을 수년간 조용히 지원했다’라는 기사에서 지난 20년간 진행된 미국과 베네수엘라 야권의 관계를 집중 조명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 정부는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이 선출돼 사회주의 정부가 꾸려진 1998년부터 다양한 방법을 동원, 지속적으로 야권과 교류하며 정권 교체를 모색했다.
중심 역할을 수행한 건 미국 정부의 재정 지원을 받는 미국민주주의기금(NED)과 그 하위조직 국제공화연구소(IRI)였다. 이들 단체는 공화당에서 공보담당 비서관을 맡았던 마이크 콜린스 등 정치인을 베네수엘라에 파견해 야권 인사들과 만나 ‘정치 멘토’ 역할을 수행하게 했다. 이들은 워크숍을 열고 △선거에서 차베스를 이기는 법 △정치적 기반을 마련하는 법 △젊은층을 공략하는 법 등을 전수했다. 이 같은 작업에 참여했던 한 미국 외교관은 WP에 “계획을 짜고 연합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당시 야권은 50개가 넘는 정당으로 분열돼 있었다”고 말했다. 2006년 대선 때는 전문가 5명을 파견해 야권 후보였던 마누엘 로살레스의 선거 유세를 지원하기도 했다.
‘사회주의 정부 타도’라는 목적 아래 진행된 물밑작업은 제도권 바깥에서도 이뤄졌다. 미 국무부 산하 대외 원조기관 국제개발처(USAID)는 반(反)정부 활동가들을 적극 지원하며 차베스 지지자들의 마음을 돌려놓기 위해 애썼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미국 대사관 내부문건에 따르면 전직 외교관 윌리엄 브라운필드는 USAID의 작업에 대해 “3,000번 이상의 포럼, 워크숍, 교육 과정을 열어 성인 23만8,000여명에게 접근, 대안 가치를 설파하고 반정부 활동가들이 차베스 지지자들과 만날 수 있는 접점을 제공했다”고 서술했다.
2007년부턴 학생운동도 지원했다. 수도 카라카스에선 종이, 마이크 등 집회ㆍ시위에 필요한 기본적인 물품을 제공하는 건 물론, 세미나를 열어 학생들에게 더욱 효과적인 반정부 운동을 하는 법을 가르쳤다. 카라카스 바깥에선 학생들이 반정부 모임을 여는 데 돈을 댔고 학생 개개인이 참가할 수 있도록 교통비도 지원했다. 이런 식으로 미국의 지원을 받은 학생 상당수가 현재 야권 주요인사로 성장했는데 과이도 의장도 이 가운데 한 명이라는 게 WP의 설명이다.
하지만 미국의 이런 시도는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는 게 WP 평가다. 실제로 차베스 전 대통령은 14년 장기집권에 성공했고, 대통령직을 온전히 수행하다 암으로 사망했다. 그의 후계자인 마두로 대통령도 미국 정부 공작보다는, 지난해 부정선거로 재선되는 등 개인적 오판에 따른 자멸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WP는 “아이러니한 점은 마두로 대통령이 합법적으로 치렀더라도 지난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있었다는 것”이라며 “페어플레이를 꺼리는 그의 성질로 절대 빠져나갈 수 없는 국제적인 위기에 놓이게 됐다”고 지적했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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