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력근로제 문구들 쟁점]
노동계 “노조 없는 영세사업장선 허수아비 대표 세워 무력화 우려”
재계 “노조가 쉽게 합의 안 할 것… 사실상 현장에선 적용 불가능”
노사정이 19일 탄력적 근로시간제(탄력근로제) 확대에 극적으로 합의하면서 제도 개선의 첫발은 뗐지만, 여전히 쟁점은 남아있다. 특히 현장의 노사합의를 존중하겠다는 취지로 합의안 조항마다 붙은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 합의’라는 문구가 걸림돌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노동계는 미조직ㆍ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는 주장을, 경영계는 강성노조가 있는 대형 사업장에서는 탄력근로제 확대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라며 제각각 불만을 표출하고 있다.
노동계는 ‘근로일 사이 11시간 연속 휴식시간 보장’ 조항에 ‘불가피한 경우 근로자 대표와의 서면합의가 있는 경우 이에 따른다’는 단서가 붙었다는데 우려를 표시했다. 우월적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허수아비 근로자대표를 만들어 서면합의를 통해 이 조항을 무력화할 수 있다는 우려다. 김형석 민주노총 대변인은 “노조가 없거나 노조의 목소리가 약한 중소영세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겠냐”고 반문했다.
사용자가 고용노동부장관에게 임금보전방안을 신고하도록 한 조항에도 ‘근로자대표와의 서면합의로 임금보전방안을 마련한 경우’를 신고예외로 규정하고 있다. 노동계는 이 역시 독소조항으로 보고 있다. 탄력근로제가 시행되면 주당 법정근로시간이 40시간에서 52시간으로 늘어나는데, 이 경우 현행 40시간 초과근로 시 받을 수 있었던 연장근로수당(통상임금150%)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 입장에서는 임금손실이 발생한다. 극단적으로 사용자가 탄력근로제를 시행하면서도 근로자대표와 연장근로수당을 전혀 주지 않기로 서면합의할 수도 있다. 근로자 입장에서 장시간 근로를 하면서도 임금손실을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최영기 전 한국노동연구원장은 “중소기업은 노조 조직률이 낮고 미조직 영세사업장이 많아 노사 자치 능력이 전반적으로 약하다”며 “노사합의에 따른다는 조항들이 오히려 노사갈등의 소지가 될 수도 있다”고 예상했다.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2017년 기준으로 10.7%인데, 소규모일수록 조직률은 급격히 떨어진다. 근로자 300명 이상 사업장은 57.3%이지만, 30~99명인 사업장은 3.5%에 불과하다.
한국노총도 이런 우려를 잘 알고 있다. 김주영 한국노총 위원장은 20일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입법과정에서 구체적인 예외조건을 담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낸다. 강력한 노조가 있는 사업장에서는 노조가 서면합의를 해줄 리 없다는 주장이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노조가 쉽게 합의해 줄 리 없으니 사실상 현장에서는 적용 불가능한 게 아닌가”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단위기간 확대를 선물로 받았지만 임금보전을 사실상 강제화 했다는 점에서 실익이 없다는 불만이다. 한 그룹 관계자는 “노사간 합의를 전제로 ‘길을 열어줬으니 현장에서 알아서 하라’는 건데 앞으로 노조와 합의하는 일이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확대된 단위기간 6개월이 일부 업종에서는 충분하지 않다는 불만도 여전히 나오고 있다.
결국 이런 쟁점들은 국회 입법과정에서 논쟁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이승욱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합의문 곳곳에 왜곡될 수 있는 조항들이 있어 입법과정에서 진통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며 “국회와 정부는 탄력근로제가 결국 근로시간 단축을 연착륙키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하면서 입법을 추진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진달래 기자 aza@hankookilbo.com
김청환 기자 chk@hankookilbo.com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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