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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 “힘을 포기하고 높이 살렸더니 배구판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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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효진 “힘을 포기하고 높이 살렸더니 배구판이 보여요”

입력
2019.02.20 14:16
수정
2019.02.20 17:56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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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 센터 양효진. KOVO 제공.
현대건설 센터 양효진. KOVO 제공.

여자 배구 국가대표 센터 양효진(30ㆍ현대건설)은 올 시즌 최고의 경기력을 선보이고 있다.

19일 현재 공격 1위(48.6%), 블로킹 1위, 속공 3위, 시간차 4위, 득점 6위(447득점) 등 전 부문에 걸쳐 최상위권이다. 김종민 도로공사 감독이 “예상대로 잘한다. 상대 수비 위치까지 다 꿰뚫어 보고 공격한다”고 극찬할 정도다. 지난 14일 기업은행 전에서는 V리그 최초로 ‘1,100블로킹’ 대기록을 달성했고, 그보다 앞선 3일에는 팀 선배 황연주에 이어 5,000득점(여자부 2호)을 달성했다.

하지만 정작 양효진은 자신의 기록에 대해 “제가 언제 뭘 달성했죠?”라며 반문했다. 18일 경기 용인시 현대건설 훈련장에서 만난 양효진은 “매 경기 ‘몇 득점, 블로킹 몇 개’ 등 목표치를 정하고 경기에 임하지만, 어떤 기록을 세웠는지는 잘 모른다. 오히려 팬들이 더 잘 알고 챙겨주신다”며 웃었다.

독보적인 ‘블로킹 여왕’은 단지 큰 키만으로 이뤄지지 않는다. 양효진은 “키(190㎝) 말고 파워나 순발력 등 배구 선수로서 장점이 하나도 없었다”면서 “코트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만의 장점을 찾으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큰 키를 활용한 블로킹을 “정말 악착같이 연습했다”고 한다. 또 강한 스파이크 대신 상대의 움직임을 먼저 읽고 코트 빈 곳을 노리는 연타ㆍ페인트 기술도 부단히 연습했다. 그의 공격에는 상대 코트를 맹폭할만한 파괴력이 없지만, 지난 12년간 공격 성공률은 무려 46%에 달한다.

그는 “어릴 때 운동 신경도 없었고 기초 체력도 부족해 배구선수는 꿈도 꾸지 않았다”고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체육시간에 줄넘기를 하다 남들보다 먼저 지쳐 주저앉아 있는데, 배구부 교사가 양효진의 키를 보고 배구를 권유했다. 억지로(?) 배구공을 잡았지만,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는 그만두려고 했다. 하지만 배구 교사가 부모님을 끈질기게 설득해 계속 하기로 정해진 것. 양효진은 본인 의사와 다른 결정에 눈물을 터트렸다고 한다. “정말 배구하기 싫어서 엉엉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다시 시작한 게 천만다행이지만”이라며 웃었다.

현대건설 센터 양효진이 지난 18일 용인 현대건설훈련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용인=서진석 인턴기자
현대건설 센터 양효진이 지난 18일 용인 현대건설훈련장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다. 용인=서진석 인턴기자

양효진이 프로에 입단(1라운드 4순위)한 2007년에는 배유나, 이연주, 하준임 등 유독 좋은 유망주들이 대거 배출됐다. 당시 우승을 차지한 GS칼텍스 신인 배유나(현 도로공사)가 신인왕에 오르며 화려한 조명을 받았지만, 양효진의 현대건설은 최하위로 시즌을 마쳤다. 양효진은 그 해 시상식 맨 뒷자리에 앉아 독하게 다짐했다고 한다. “프로에게 뒷자리란 정말 서러운 자리구나. 신인상은 못 탔지만 다른 상은 꼭 내가 받겠다.”

이후 부단한 노력 덕에 그의 실력은 일취월장했고 국가대표와 소속팀을 막론하고 붙박이 주전으로 맹활약, ‘국보급 센터’로 자리매김했다. 무엇보다 큰 부상 없이 꾸준하다. 2009~10시즌부터 지난 시즌까지 무려 9시즌 연속 블로킹 1위다. 올 시즌도 이 부문 1위(세트당 0.86)인데 2위(정대영ㆍ0.67)와의 격차가 커 ‘10시즌 연속 1위’ 가능성이 높다.

현대건설 센터 양효진. KOVO 제공.
현대건설 센터 양효진. KOVO 제공.

사실 요즘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지난 14일 기업은행 전에서 공격 중 어깨를 다쳐 풀스윙 하기 부담스럽다. 양효진은 그러나 끝까지 시즌을 책임진다는 각오다. 양효진은 “조금 아프다고 코트에서 빠지면 팀 분위기가 가라앉을 것”이라며 “남은 경기가 4게임뿐이라, 마지막까지 뛰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즌 초반 연패 중에도 끝까지 응원해 주신 팬들에 감사하고 죄송했다”면서 ”개인ㆍ팀 성적도 중요하지만 팬들에게 좋은 경기력을 보여야 한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올해 팬서비스에 성실하다. 지난 17일 경기 후에도 코트 밖에서 기다려준 팬들에게 일일이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양효진은 “정말 끝까지 사인해 드리고 싶었지만 버스 출발 시간에 몰려 마지막 몇몇 분께 못해줬다”면서 “서운해 하시던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이 자리를 빌어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용인=강주형 기자 cubi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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