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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일전망대] 긴장 풀린 철책은 유물인 듯… 장엄한 해금강이 봄을 부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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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일전망대] 긴장 풀린 철책은 유물인 듯… 장엄한 해금강이 봄을 부르네

입력
2019.02.19 18:00
수정
2019.02.19 21:50
1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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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측 풍경. 푸른 바다에 떠는 송도는 남한 땅이고, 뒤편 바위 봉우리(구선봉)는 북한 땅이다. 고성=최흥수기자
고성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북측 풍경. 푸른 바다에 떠는 송도는 남한 땅이고, 뒤편 바위 봉우리(구선봉)는 북한 땅이다. 고성=최흥수기자

차가운 바람 끝에 살짝 봄기운이 감지된다. 강원 고성 통일전망대 바로 아래 DMZ박물관, 빨강 노랑 파랑의 형형색색 바람개비는 경쾌하게 돌아가고 시린 바다엔 점점 초록이 번진다. 관람객의 표정에서도 남북이 대치하는 대한민국 최북단이라는 긴장감은 찾기 어렵다. 상대방을 해칠 어떠한 무기 반입도 금지한 지역, 말대로라면 비무장지대는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워야 할 곳이지만 지금까지 현실은 정반대였다.

◇금강산이 코앞, 고성 통일전망대

고성군 현내면 명호리 통일전망대 주차장에 도착하면 언덕 위에 ‘ㄷ’자를 돌려놓은 듯한 모양의 대형 통유리 전망대가 눈길을 잡는다.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가운데로 난 계단을 이용하거나, 우측 비탈의 비상도로를 걸어 오르게 돼 있다.

현대식 건물로 세운 고성통일전망대.
현대식 건물로 세운 고성통일전망대.
통일전망대 아래 고성 실향민 망배단.
통일전망대 아래 고성 실향민 망배단.
고성통일전망대 주차장의 기차 카페. ‘대한민국 마지막 커피집’으로 홍보하고 있다.
고성통일전망대 주차장의 기차 카페. ‘대한민국 마지막 커피집’으로 홍보하고 있다.

전망대가 세워진 곳은 해발 70m에 불과하지만, 꼭대기에 다다르면 작은 반전이 기다린다. 언덕에 가려졌던 푸른 바다와 드넓은 해변 뒤편으로 해금강의 절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금강산의 아주 일부분에 불과하지만 단순히 북녘 땅이 코앞이라는 감회 이상이다. 거북 한 마리가 해변에서 어슬렁어슬렁 바다로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모양의 송도, 그 뒤편으로 금강산 일만이천봉의 끝자락, 구선봉(낙타봉) 바위 봉우리가 우람하다. 산 전체가 오밀조밀한 바위 군으로 형성돼 있어 매끈하면서도 부서지는 파도처럼 눈부시다.

바다로 이어지는 해금강의 말무리반도와 만물상, 현종암, 사공바위, 부처바위 등은 맨눈으로 구분이 어렵고, 망원경을 이용해야 구분이 가능하다. 일출봉, 채하봉, 육선봉, 집선봉, 세존봉, 옥녀봉, 신선대 등 내금강의 능선도 맑은 날이라야 또렷하다. ‘선녀와 나무꾼’ 전설을 간직한 감호도 보일 듯 말 듯 하다. 모든 게 손에 잡힐 듯하면서도 제대로 파악되지 않아 아쉬움이 남지만, 비무장지대 통일전망대 중에서 가장 시원한 풍경이다.

구선봉 방향 산자락에는 남북을 잇는 동해선 철도와 도로가 길게 연결된 모습이 보인다. 그 허리춤 어디쯤에 휴전선 철책이 남북을 가르고 있다. 전망대보다 금강산에 한발 다가선 동해안 최전방 군 관측소(GP)를 철거하지 않고 보존하기로 한 것처럼, 66년 국토의 허리를 갈라놓은 분단의 선도 언젠가는 역사의 유물로 전락할 것이다.

남북 화해로 달라진 전방 분위기는 곳곳에서 감지된다. 전망대의 ‘통일홍보관’은 ‘남고성’과 ‘북고성’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고성군은 분단된 한반도의 축소판이다. 인제에서 진부령 고개를 넘는 44번 국도 표지판에는 최종 목적지를 ‘고성(간성)’이라 표기하고 있다. 현재 고성군청 소재지는 간성이고, 진짜 고성은 북측에 있기 때문이다. 관광 재개를 기대하는 금강산 온정리도 고성군 땅이다. 미시령을 경계로 설악산과 금강산이 구분된다고 치면, 남북 고성군이 합쳐져야 금강산도 비로소 하나가 된다. 전망대 바로 아래 해수관음상과 성모상 앞에는 고성 실향민 ‘망배단’과 비석이 놓여 있다. ‘황토마루 고개 넘어 그리운 고향 / 꿈엔들 잊힐리야 우리의 소원 / 메나리 가락에 목들이 메어 / 어머니 품 안으로 안기어 가는 / 이 길은 고향의 길 불망의 길.’ 고향을 지천에 두고 갈 수 없는 실향민의 마음인 듯, 비석에 새긴 글귀가 슬프고 처량하다.

관람객들이 DMZ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조형물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관람객들이 DMZ박물관 야외전시장의 조형물에서 밝은 표정으로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관람객들이 ‘DMZ는 평화입니다’라는 대형 사진이 걸린 박물관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관람객들이 ‘DMZ는 평화입니다’라는 대형 사진이 걸린 박물관 입구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DMZ박물관 내부 전시물. 분단의 상징물도 하나 둘씩 유물이 될듯하다.
DMZ박물관 내부 전시물. 분단의 상징물도 하나 둘씩 유물이 될듯하다.
관람객들이 DMZ박물관 야외에 전시한 철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관람객들이 DMZ박물관 야외에 전시한 철책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있다.

통일전망대 인근 DMZ박물관의 전시도 변화하는 남북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6ㆍ25 전쟁의 참상을 내세워 북한에 대한 적개심과 분노만 강조했던 전시물에 봄처럼 화사한 기운이 감돈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장면을 담은 사진과 함께 통일을 기원하는 관람객의 메모지가 주렁주렁 매달려 무성한 나무로 자랐다. 외부 전시장의 ‘DMZ’ 조형물은 ‘평화’ ‘사랑’을 의미하는 각국의 언어로 화려하게 장식했고, 철조망에는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구호 아래 남북 병사가 얼싸안는 그림이 걸렸다. 전시된 철책을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학생들의 표정에도 환한 웃음이 번진다. 가장 긴장이 팽팽한 이곳에서 분단은 이미 박물관의 유물이 된 듯하다.

◇통일전망대 출입 절차

통일전망대 출입을 위해선 10km 아래 통일안보공원에서 출입신고서를 작성하고 약 7분간 영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 전망대로 가는 길 중간의 군 검문소에 신고서를 제출하면 출입증을 내어 준다. 출입 시간은 동절기 기준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50분까지다. 관람요금은 1인 3,000원, 주차요금 5,000원이다.

◇명태ㆍ문어ㆍ성게…고성 최북단 3색 포구

금강산 관광이 곧 재개될 거라는 기대가 높지만, 최북단 주민들의 현실은 아직 겨울이다. 넓고 곧은 도로가 좋은 것만은 아니다. 간성에서 동해안 남북출입사무소까지 4차선 국도가 개통되면서 대한민국의 실질적 최북단 명파리 마을에는 지나는 차량이 뜸하다. 관광객을 겨냥한 커다란 식당 간판만 도로를 지키고 있다. 맑은 파도 넘실대는 명파(明波) 해변도 철책 문이 굳게 잠겨 있다. 아직까지 여름 한 철에만 한시적으로 개방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내려와 마차진해변도 금강산콘도 앞 일부분에만 들어갈 수 있다.

동해안 최북단 명파리 마을엔 대형 식당 간판만 두드러질 뿐,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다.
동해안 최북단 명파리 마을엔 대형 식당 간판만 두드러질 뿐, 지나다니는 차가 거의 없다.
명파해변은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명파해변은 여름에만 한시적으로 개방한다.
금강산콘도 앞 작은 섬과 연결된 마차진해변.
금강산콘도 앞 작은 섬과 연결된 마차진해변.

화진포까지 내려오면 그제야 철책선은 사라지고 드넓은 바다와 마주한다. 해변 바로 앞에는 거북을 꼭 닮은 금구도가 헤엄치듯 떠 있고, 아래쪽 산자락에는 김일성 별장이었다는 ‘화진포의 성’이 자리 잡고 있다. 호수와 바다 사이에 형성된 화진포해변이 앞마당처럼 내려다보이는 곳이다. 바다와 호수, 솔숲이 어우러진 화진포에는 이승만 전 대통령과 이기붕 부통령의 별장도 남아 있어 고성 최고의 경관으로 꼽힌다.

마차진해변과 화진포 사이 대진항은 현내면 소재지이자 동해안 최북단 항구다. 지금은 철길의 흔적을 찾을 수 없지만, 1935년 동해북부선 철도 개통으로 청어와 정어리를 비롯한 수산자원과 농산물을 북한 원산으로 실어 나르는 교통의 요지였다. 요즘 대진항은 문어로 이름을 날리고 있다. 포구의 작은 배들이 대부분 문어잡이 어선이다. 포구 한쪽에서는 갓 잡아 온 문어를 저울에 달고, 다른 쪽에서는 삶아 내걸어 놓은 문어에서 김이 무럭무럭 피어 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다. 포구 앞 방파제는 산책로를 연장해 해상공원으로 조성했다. 바닥까지 비치는 쪽빛 바닷물에 싱싱한 미역이 일렁인다. 대진항 바로 아래 초도항은 성게를 특산물로 내세운다. 자그마한 포구의 방파제 끝에 해녀와 성게 조형물이 나란히 서 있다.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히 쉬어가기 좋은 곳이다.

대진항은 문어로 유명하다. 포구에서 갓 삶은 문어를 널어 식히고 있다.
대진항은 문어로 유명하다. 포구에서 갓 삶은 문어를 널어 식히고 있다.
대진항 앞 방파제를 연장한 해상공원.
대진항 앞 방파제를 연장한 해상공원.
초도항의 성게 조형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히 쉬기 좋다.
초도항의 성게 조형물. 찾는 사람이 많지 않아 조용히 쉬기 좋다.
화진포해변까지 내려와야 철조망 없는 바다를 접할 수 있다. 바로 앞에 거북을 닮은 금구도가 있다.
화진포해변까지 내려와야 철조망 없는 바다를 접할 수 있다. 바로 앞에 거북을 닮은 금구도가 있다.
거진읍의 명태 벽화. 명태 포획이 금지돼 거진에서도 국산 명태는 찾아 볼 수 없다.
거진읍의 명태 벽화. 명태 포획이 금지돼 거진에서도 국산 명태는 찾아 볼 수 없다.
거진읍 한 식당의 명태찌개. 러시아산이지만 진하면서도 깔끔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거진읍 한 식당의 명태찌개. 러시아산이지만 진하면서도 깔끔한 국물 맛이 일품이다.
거진 해변에서 본 거진읍 풍경.
거진 해변에서 본 거진읍 풍경.

초도항에서 화진포를 지나 남쪽으로 약 10km 내려오면 거진항이다. 거진항은 전국 최대 명태잡이 항구였지만 지금은 담장 벽화와 조형물로만 명태를 볼 수 있다. 자원 보존을 위해 현재 명태 조업은 금지돼 있고, 실수로 걸려든 것도 판매를 할 수 없다. 명태를 밟고 다녔다거나, 동네 개도 거들떠보지 않았다는 얘기를 주민들에게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지만, 포구에서 예의 활력을 찾기는 어려웠다. 대게와 도치, 대구 등 배에서 부려놓은 수산물을 전부 합해도 몰려든 상인보다 적어 보였다. 그래도 러시아산이기는 하지만 읍내에 명태 요리로 이름난 식당이 여럿 있어 아쉬움을 달랠 수 있다.

고성=글ㆍ사진 최흥수기자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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