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 땐 ‘잉글랜드’ 중심 고립
19세기와 20세기 초반 세계를 주름잡던 대영제국이 유럽연합(EU) 탈퇴 즉 브렉시트를 계기로 영국이라는 섬나라, 그것도 스코틀랜드 지방은 제외한 왜소한 국가로 전락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세계 제국의 후계자에 걸맞게 다양성을 인정하던 영국이 ‘잉글랜드’ 중심의 편협한 고립주의에 빠져들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 독립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U에서 분리된 옹졸한 영국에 속하느니, 영국을 떠나 EU에 속하는 게 낫다는 주장이다.
1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북아일랜드의 급진 민족주의자들은 브렉시트를 아일랜드 재통일의 기회로 보고 있다. 그간 함구 대상이었던 통일 문제가 브렉시트 덕분에 수면 위로 올라왔기 때문이다. 게리 도낼리 런던데리 시의원은 “브렉시트는 아일랜드의 분단이 얼마나 불합리한지 보여준다”고 진단했고, ‘아일랜드 통일 10년 계획’에 관한 책을 쓴 폴 고슬링 역시 “브렉시트로 아일랜드 통일에 속도가 붙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 BBC방송은 지난 8일 복수의 각료를 인용, “브렉시트로 아일랜드 통일에 대한 투표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러한 주장은 일부 급진주의자들의 허황된 꿈이 아니다. NYT에 따르면 택시기사들이 “곧 (영국 화폐인 파운드화 대신) 유로화로 택시비를 받는 게 아니냐”고 농담을 할 정도로 통일 관련 논의가 북아일랜드에서 두 번째로 큰 대도시인 런던데리 곳곳에서 이뤄지고 있다. 아일랜드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최근 아일랜드의 한 TV프로그램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노딜 브렉시트와 아일랜드 통일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86%가 통일을 택했다.
이 같은 분위기의 배경에는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됐을 때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형성될 ‘하드 보더’가 있다. 통행ㆍ통관 절차를 엄격히 적용하는 물리적 국경이 생기면 1998년 벨파스트 합의로 간신히 봉합한 갈등이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팽배한 상황이다. 실제 리오 버라드커 아일랜드 총리는 지난달 ‘노 딜’ 브렉시트가 이뤄진다면 국경에 군대를 배치할 수 있다고 시사했다. 같은 달 런던데리에서 발생한 차량 폭탄 테러도 일촉즉발 분위기에 기름을 부었다.
멜 깁슨 주연의 미국 할리우드 영화 ‘브레이브 하트’”(1995년 작품)를 통해 독립 성향이 전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스코틀랜드도 자치정부가 직접 독립 가능성을 내비칠 정도로 ‘탈영국’에 적극적이다. 니콜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지난 11일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스코틀랜드가 3~5년 내 독립국가로 EU에 가입할 수 있을지’ 묻는 질문에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당장 특별한 기간을 정해두지 않았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스코틀랜드는 EU와 유엔에 가입하려는 독립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코틀랜드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 대표이기도 한 스터전 수반은 이전부터 분리독립 주민투표를 요구해왔다. 2016년 6월 브렉시트 국민투표 당시 스코틀랜드에서는 브렉시트 반대 의사가 더 많았다. 실제 2017년 3월 스코틀랜드 의회가 중앙정부에 독립 주민투표 승인을 공식 요청하는 발의안을 통과시킨 뒤 이를 테리사 메이 총리에게 정식 전달했지만 메이 총리가 이를 거부했다.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주민투표는 독립 반대 55.3%, 찬성 44.7%로 부결됐다.
손영하 기자 froze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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