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분 46초.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동물원에 있는 마흔 살 암컷 코끼리 ‘라미’ 사육사 앞에서 방문객이 보낸 평균 시간이다. 방문객 절반 이상은 사육사 앞에 서지도 않고 그냥 지나쳤고 43%는 잠시 머물렀다. 라미를 보기 위해 근처 의자에 앉은 사람은 6.6%에 불과했다. 조이스 풀, 신시아 모스 등 세계에서 코끼리 전문가들로 꼽히는 이들이 라미를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1월까지 수집한 자료에 따른 것이다. 한 사람당 약 2분 가량의 관람을 위해 라미는 태어나자마자 40년을 동물원 철창 안에 살고 있다.
요하네스버그 동물원에서는 지금 라미의 앞날을 놓고 논쟁이 한창이라고 한다. 코끼리사에 홀로 남은 라미를 위해 동물원은 다른 코끼리를 더 들여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야생동물 활동가와 일부 전문가들은 지금이라도 라미를 생츄어리(보호소)나 야생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홀로 남은 라미에 대해 내로라 하는 코끼리 전문가들이 의견서까지 낸 것은 라미가 우선 암컷 코끼리이기 때문이다. 암컷 코끼리는 모계를 중심으로 무리를 이루면서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로 혼자서는 살 수가 없다고 한다. 물론 수컷도 다른 코끼리와 유대관계가 필요하지만 열 살이 넘으면 독립을 했다 짝짓기를 위해 다시 무리에 합류하면서 살아가는 특성상 동물원에서는 사육 시 암컷의 사회적 활동을 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코끼리 전문가들은 뛰어난 인지 능력과 지능이 있고 무리와 끈끈한 사회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코끼리를 충족시킬 인위적 사육 공간 마련은 사실상 어렵다고 보고 있다. 사회성 충족만 따져도 암컷의 경우 최소 3,4마리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게 여러 동물원협회의 주장이다. 더구나 코끼리가 외롭다고 코끼리를 또 들이면 동물원 코끼리는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문제가 남는다.
나라 반대편에서 벌어진 이야기지만 우리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얼마 전 전주동물원에서는 ‘코돌이’가 스물 아홉 살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야생에서 사는 코끼리 수명의 절반 수준이다. 코돌이는 2004년부터 전주동물원 시멘트바닥에서 생활해왔고 2011년부터는 지속적인 발 건강 문제를 겪어 왔는데 결국 지난 1월 쓰러진 후 일어나지 못했다. 코돌이가 죽자 홀로 남은 암컷 ‘코순이’의 문제가 떠올랐다. 요하네스버그 동물원 라미처럼 코순이 역시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전주동물원은 또 다른 코끼리 구입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지만 이는 최종적 해법이 될 수 없으며 현실적으로도 멸종위기종인 코끼리의 국내 반입은 어려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코끼리가 동물원에서 살아가서는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코끼리는 무리 생활을 하며 하루에 수십 ㎞씩 이동하는 동물이다. 하지만 동물원 속 코끼리는 하루 종일 철창 안에 무료하게 서 있는 게 전부다. 동물원 코끼리에게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발 건강은 코끼리의 수명을 단축시킨다. 아무리 사육사가 무료함과 비정상적 행동을 줄이기 위해 행동풍부화를 한다 해도 사육시설은 코끼리에게 그저 좁은 감옥시설일 뿐이다.
전시동물 보호단체인 동물을위한행동에 따르면 국내에 남은 코끼리는 이제 17마리다. 단지2분의 관람을 위해 가족과 함께 사랑을 느끼며 수십㎞씩 탐험하던 코끼리를 감옥에 가둬 놓을 권리가 우리 인간에게 있을까.
고은경 기자 scoopk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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