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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서 셀프 검사하라고?” 한참 빗나간 살충제 계란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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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서 셀프 검사하라고?” 한참 빗나간 살충제 계란 대책

입력
2019.02.19 04:40
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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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계업계, 68일째 천막농성 왜?] 

 4월 말부터 선별ㆍ세척 설비 갖춘 식용란 선별포장장 통해서만 유통 

 항생제 등 잔류물질 검사 규정 없어… 살충제 계란 감시 여전히 불투명 

살충제 계란 대책의 내용 및 문제점_신동준 기자
살충제 계란 대책의 내용 및 문제점_신동준 기자

충북 청주시 오송읍 오송국가생명과학단지(식품의약품안전처) 정문 앞에서는 18일에도 전국 양계농가를 대표하는 대한양계협회가 68일째 천막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천막 주변엔 ‘양계농가 다 죽이는 식약처장은 즉각 사퇴하라’, ‘일방적인 식용란선별포장업 양계농가 다 죽는다’ 등의 현수막이 휘날린다.

양계 농가가 투쟁에 나선 건 지난 2017년 8월 전국을 공포에 몰아넣었던 ‘살충제 계란 파동’의 후속 대책으로 오는 4월 시행되는 ‘식용란선별포장업 제도’ 때문이다. 이 제도에 따라 앞으로 농가들은 최소 수억 원을 들여 세척기와 파각검출기(깨진 계란을 골라내는 기계) 등을 갖춘 후, ‘셀프검사’를 거친 가정용 계란만 유통 상인에게 팔 수 있다. 깨지거나 분변이 묻은 ‘불량 계란’을 유통 전 걸러내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농가와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애초 목적이던 살충제 계란은 걸러낼 수도 없고, 현재의 후진적인 유통구조를 더욱 공고화하는 졸속 행정”이라고 비판한다. 농가에 엄청난 부담을 지우면서도 계란 안전은 전혀 담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지난 12일 현장에서 만난 이홍재 양계협회 회장은 “이게 무슨 살충제 계란 대책이냐”며 “농가들이 오히려 규제를 강화해달라고 부르짖는 코미디 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지금 양계 현장에선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무너진 농가 기대 

2017년 계란에서 진드기 박멸 살충제 성분(피브로닐 등)이 발견되는 이른바 살충제 계란 파동이 터지자, 정부는 그 해말 ‘식품안전 개선 종합대책’을 발표한다. 대책에는 ‘가정용 계란은 선별ㆍ세척 설비를 갖춘 식용란선별포장업체(GP)를 통해서만 유통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지금도 소, 닭, 우유 등은 지역별 거점 처리장(도축장, 집유장 등)에서 항생제 잔류량, 질병여부 등을 검사한 후 유통된다. 하지만 계란의 60%는 이런 과정 없이 중량ㆍ크기 등만 단순 선별해 바로 유통되고 있다. 농가에서 전국 3,000개 ‘점조직’ 유통상인을 거쳐 시장으로 곧장 나가니 살충제 계란을 사전에 걸러낼 수 없는 구조다.

이에 농가들은 진작부터 “우리도 지역별로 계란을 모아 ‘세척ㆍ선별→검사(살충제 등)→포장’하는 광역 계란집하장(GP센터)을 만들자”고 주장해왔는데, 이런 방향이 정부 대책에 담긴 것이다.

하지만 농가의 기대는 곧 무너졌다. 식약처는 작년 4월 관련 법(시행규칙)을 개정, ‘가정용 달걀은 식용란선별포장장에서 선별ㆍ포장 처리해야 한다’고 의무화(올해 4월 25일 시행)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개정안은 농가나 상인들도 검란기와 파각검출기, 세척기 등을 갖추면 식용란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당초 농가에선 농협 등 제3자가 구축하는, 지역별 거점 형태의 대규모 GP센터를 기대했는데, 개별 농가가 계란을 ‘셀프 검사’하는 체제로 변질된 것이다. 산란계 농장주 안모(경기 연천군)씨는 “선별포장업 허가를 받으려면 기본 시설비로만 수억 원이 든다”며 “3~5년 기간을 잡아도 인프라가 구축될까 한데, 이렇게 졸속으로 시행하는 게 말이 되냐”고 비판했다. 안 씨는 작년 말 관련 설비 구축에 약 2억원을 투자했다.

 ◇계란 믿고 먹을 수 있나 

문제는 식용란선별포장업이 시행되어도 안전한 계란만 식탁에 오른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이다. 우선 셀프 검사가 한계다. 식약처 관계자는 “식용란선별포장업체에 대한 상시 검사 체제를 강화할 예정”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충북에서 산란계 16만수 농장을 운영하는 남모씨는 “농가가 스스로 생산한 계란 중 불량계란을 100% 걸러낼 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게다가 식용란선별포장 절차에는 살충제나 항생제 등 잔류물질 검사가 따로 규정돼 있지 않다. 살충제 계란이 나와도 걸러낼 방법이 없다는 의미다. 전북 김제 양계농가의 박모씨는 “병 든 산란계에 항생제를 투여하면 ‘휴약기간’이 지나 계란을 낳아야 하는데 이 역시 농가의 양심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반면 육계는 도계장으로 가기 전에 샘플검사를 하고, 도계장에서 또 검사를 해 연간 10억마리가 생산돼도 항생제 문제가 없다”고 전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대책이 우리나라의 후진적인 계란 유통구조를 광역 GP센터 중심으로 선진화하려는 방향에 역행한다는 점이다. 독일은 GP센터를 거친 계란만 유통이 가능하고, 일본도 계란의 약 80%가 GP센터를 통과한다.

김현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관계자는 “소나 닭이 모이는 도축장에는 검사관이 상주하며 위해 물질을 검사 하는데, 개별 농가 단위로 식용란선별포장업 체제가 구축되면 유통 전 상시 검사가 가능하겠냐”고 지적했다. 이홍재 회장은 “당초 농협이 광역 GP센터 투자를 적극 검토했는데, 이번 대책으로 선진국형 광역 GP센터는 아예 물 건너 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식약처 관계자는 “지금도 대형마트나 약 3,000곳의 식용란수집판매업자에게 정기적으로 잔류물질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며 “이번 제도 시행으로 올해 10월까지 약 100곳이 식용란선별포장업 허가(현재 28곳)를 받으면 이 때부턴 이 곳만 관리하면 되기 때문에 살충제 계란이 유통될 가능성을 지금보다 더 낮출 수 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정부의 조급증을 비판하고 있다. 정승헌 건국대 교수는 “막상 광역 GP센터를 지으려니 사업자나 장소도 있어야 하고 비용도 들고 오래 걸리니 정부가 일단 제도 시행에만 초점을 맞추고 개별 농가에 부담을 지워버린 꼴”이라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광역 GP센터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김재민 농장과 식탁 정책연구실장은 “살충제 계란에 대한 대책이라고 하기엔 ‘반쪽자리’, ‘면피용’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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