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당 퇴행ㆍ반동 보수지지층 실망시켜
文 정부 무능과 개혁후퇴 진보층도 이반
기득권 정치 실망, 극단적 포퓰리즘 유발

대통령 탄핵과 촛불혁명 과정에서 얻은 긍정적 효과 중 하나가 시민들의 ‘정치 관심’ 증대다. 불의한 권력 축출과 사회 변혁을 주도했다는 자부심이 정치 효능감을 한껏 높였다. 권위주의 정치하에서 깊게 퍼져 있던 ‘정치 혐오’와 ‘반(反)정치’를 비로소 탈각할 수 있었다. 인터넷과 SNS에서 시민들의 활발한 정치 견해 표출이 급증한 것이 그 증좌다.

하지만 지금의 정치권 모습은 시민들의 고양된 정치 의식과는 너무나 판이하다. 시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기는커녕 실망을 안기고 분노를 유발한다.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는가 하면 비리와 부패, 기득권 지키기, 끝없는 정쟁을 무한 반복하고 있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정치가 오히려 문제 자체가 된 형국이다.

정치 퇴행과 반동의 전면에는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이 있다. 반헌법적, 반민주주의적 ‘5ㆍ18 망언’은 급진 우경화한 한국당의 좌표를 드러낸다. “역사에 대한 다양한 해석”이라는 당 지도부의 입장은 역사적 사실과 법적 판단을 기만하는 행위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터져 나온 해묵은 색깔론과 ‘박근혜 옥중정치’ 논란, 수구세력의 재등장은 또 어떤가. 탄핵 이전도 모자라 5공까지 과거로의 질주는 ‘낡은 보수’의 회귀본능이다.

보수 지지자들이 한국당에 바란 것은 이런 모습이 아니었다. 대선과 지방선거 참패라는 폐허 속에서 당당하고 건강한 ‘개혁보수’로의 재탄생을 원했다. 균형잡힌 대북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포용, 성장 못잖은 분배에의 관심이 그 요체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성찰적 근대’야 말로 새로운 시대의 보수주의가 지향할 길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보수 혁신’과 변화에의 거부는 지지자들에 대한 배반이다.

촛불로 태어난 문재인 정부도 시대적 소명을 이루기에는 역부족이다. 진보진영의 성장 패러다임을 내놓기에는 실력이 부족했고 준비도 미흡했다. 사회개혁은 초반에 반짝했을뿐 힘있게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진보의 강점인 소통과 공감에서도 손가락질받는 처지에 놓였다. 개혁정책 후퇴로 정체성마저 흔들려 핵심 지지층도 등을 돌리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더 심각한 건 기득권 보수세력 뺨치는 구태의 답습이다. 권력에 취해 사익 추구에 골몰하는 집권세력의 행태는 개탄을 자아낸다. 여러 대선주자급 인사들이 도덕성 문제와 정치적 일탈로 스러졌고, 여당 의원들의 비도덕적 행위도 연일 도마에 오르고 있다. 진보세력에 유독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고 하소연하지만 일반의 눈높이로는 별반 다르지 않게 보인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닮은 것은 도덕성 실종만이 아니다. 정치공학적 담합에 가까운 선거구제 개혁 태업,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의원들의 재판 청탁 침묵 등 거대 양당의 이심전심은 경이로울 정도다. 오죽하면 ‘더불어한국당’이라는 신조어가 나왔겠는가.

시민을 배신한 정치의 귀결이 어떤지는 요즘 서구의 민주주의 국가들이 생생히 보여 준다. 기득권 정치세력과 엘리트들에 대한 반발이 극단적인 포퓰리즘의 도미노 현상을 낳고 있다. ‘이단자’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영국의 브렉시트 위기, ‘노란조끼 시위’ ‘오성운동’ ‘시리자’ ‘포데모스’ 등 좌우 가리지 않는 포퓰리즘이 세계 정치를 혼란에 빠트리고 있다. 불평등과 일자리, 복지 등 삶의 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결과다.

우리 정치의 무능과 무기력은 지금의 한반도 주변 상황에 대한 현실인식 부재만 봐도 실감할 수 있다. 미중 대립은 무역분쟁, 기술분쟁을 넘어 북핵 문제까지 결부돼 전략경쟁, 패권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머지않아 양 강대국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 순간이 닥칠지 모른다. 일본과의 갈등 양상은 긴장의 상시화로 이어져 장기적으론 군사적 대립국면을 예고한다.

올해는 3ㆍ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나라를 힘없이 빼앗긴 건 무능하고 부패한 정치지도자들 때문이었다. 한국 정치에 미래는 있는지 묻고 싶다.

수석논설위원 cj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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