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년간 서로 존재도 모르다가 유전자 등록한 언니 덕에 재회
갓난아기 때 해외로 입양돼 미국과 벨기에서 살아온 친자매가 유전자검사를 통해 서로의 존재를 알고 47년만에 대구에서 극적으로 재회했다. 부모를 찾아나선 언니 덕분에 상봉한 이들 자매는 이제 함께 부모 찾기에 나섰다.
18일 오전11시, 대구 중구 대구역 로비. 닮은꼴 중년 자매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끊임없이 눈맞춤을 하다 끌어안고 춤을 추었다. 대구에서 생후 28개월과 3주만에 버려진 뒤 보육원신세를 지다가 해외로 입양된 크리스틴 패널(49), 킴 헬렌(47) 자매다. “화장실에 갔다 올 동안 아이를 좀 봐달라”고 부탁한 후 모습을 감췄다는 어머니의 마지막 행적을 찾아 대구역 곳곳을 둘러 보았다.
자매와 해외 입양인을 돕는 한국과 미국 여성들의 모임 ‘배냇’ 등에 따르면 이들이 버려진 것은 1971년 말이다. 1969년생인 언니는 그 해 11월13일 대구 반야월역에서, 동생은 3주 뒤인 같은 해 12월 3일 대구역 광장에서 발견됐다. 행인이 울고 있는 이들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 대구와 서울의 보육원에서 생활하다 이듬해 10월과 9월에 각각 미국과 벨기에로 입양됐다.
언니 크리스틴은 미국의 법률사무소에서, 동생 킴은 벨기에에서 심리적ㆍ신체적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자립을 도와주는 교육자로 활동 중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몰랐다.
친 자매임을 알게 된 것은 유전자검사 덕분이다. 어렴풋이 부모의 존재를 기억하고 있던 언니는 그 동안 혹시나 하는 마음에 유전자 분석에 기반을 둔 혈연 찾기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인 ‘마이헤리티지’에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등록해 두었다. 동생이 지난해 12월 콩팥 제거 수술에 필요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하며 기적이 일어났다. 각 검사기관의 유전자 정보 공유를 통해, 두 사람은 지난달 15일 “100% 일치하는 친자매를 발견했다”는 결과를 전달받았다. 뜻밖의 사실에 놀란 이들은 영상 통화를 하며 만남을 손 꼽아오다 지난 15일 저녁 대구에서 상봉한 데 이어 이날 대구역을 둘러보았다.
동생 킴씨는 “기차역에서 언니를 보자마자 바로 언니라는 사실을 알았다”고 말했다. 외모뿐 아니라 세 아이의 엄마, 생선을 싫어하는 식성, 춤이라는 취미활동 등 닮은 꼴 그 자체였다. 상봉 첫날 춤과 소주로 회포를 풀었다는 이들은 서문시장과 카페 등을 투어하며 새로운 추억을 쌓고 있다.
두 사람의 최대 목표는 부모님을 찾는 것이다. “무슨 사연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나를 버렸다는 사실을 한 번도 원망해본 적이 없다”며 “단 한번만이라도 좋으니 부모를 만나 우리의 본명과 생인, 부모님 중 누구를 닮았는지 알고 싶다”고 말했다. 또 “문재인 대통령께 이메일을 보내 22만 해외입양인에 대해 진솔한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동생은 22일 벨기에로 돌아가게 된다. 언니는 한국에 더 체류하다 귀국할 예정이다. 미국과 벨기에의 가족들도 너무 기뻐한다는 자매는 “각자 가족을 만나보고, 함께 식사와 쇼핑 등 하고 싶은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웃었다.
자매의 부모이거나 이들 가족을 알고 있는 사람은 대구경찰청 장기실종수사팀으로 연락하면 된다. (053)804-3455
/그림 2[저작권 한국일보] 47년만에 재회한 입양자매 크리스틴(왼쪽)씨와 킴씨가 "엄마 사랑해요"를 외치며, 부모님을 찾고자 하는 소망을 드러냈다.
대구=글·사진 윤희정기자 yoon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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