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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 스토리] ‘SKY캐슬’처럼 서울대 의대만 가면 탄탄대로일까

입력
2019.02.25 04:40
수정
2019.02.25 13:08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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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대 의대생들 이야기 

서울의대 수업장면. 서울의대 제공
서울의대 수업장면. 서울의대 제공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데 ‘너도 드라마처럼 유명 학원강사나 입시 코디의 관리를 받아 서울대 의대에 합격했냐?’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난감합니다. 사람들이 서울대 의대에 합격한 모든 학생들이 어마어마한 관리를 받은게 아니냐는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것 같아요.”

서울대 의대 본과 3학년인 이종준(22)씨는 엄청난 거액을 들여 유명학원 강사와 입시 코디네이터를 동원해 자녀를 서울대 의대에 보내려는 상류층 학부모들의 세태를 그려 화제를 모았던 드라마 ‘SKY 캐슬’때문에 요즘 기분이 씁쓸하다고 한다. 동료들 역시 이런 반응에 적잖이 당황하고 있다는 게 이씨는 말한다.

이씨는 서울대 의대에 입학한 전형적인 모범생이다. 중학교 때부터 톱클래스 학생들만 공부할 수 있는 대치동학원에서 공부했으며, 최상위권을 유지하다가 고등학교(자사고)도 자연계 수석으로 졸업했다. 이씨처럼 대치동의 톱클래스학원-특목고ㆍ자사고-서울대 의대 코스로 입학한 동료들이 꽤 많다그는 말한다. 말은 안하지만 서로 입시를 준비하며 드라마처럼 유명강사와 코디네이터 등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은 이들도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고 한다. 하지만 남의 도움을 받은 공부로 서울대 의대를 졸업하기는 불가능하다고 이씨는 단언한다.최고 수재들이 모인 이곳에서 살아남아 의사가 되려면 치열한 생존경쟁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이씨가 동급생들이 ‘나 시험 포기했어’라고 얘기할 때 이를 믿었다가 자신이 순진했다는 걸 깨달은 건 입학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수업이 오후 5시 정도 끝나는데 동급생들이‘놀러 간다’며 사라져 이를 믿고 마음을 놓았다가 낭패를 봤다는 것. 그는 곧 학교 인근 ‘24시간 스터디카페’에서진을 치고 있는 동료들을 발견했다고 한다. 이씨는“공부라면 다들 자신이 있는 친구들이고, 몇 페이지 몇 줄에 뭐가 있는지 술술 이야기하는 똑똑한 친구들이 숱하다”며 치열한 경쟁의 현실을 들려줬다. 시험 후에는 성적과 등수를 확인할 수 있는데 그는 본과에서 처음 시험을 보고 성적을 확인했을 때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고 한다. 본과 1,2학년 때는 성적 스트레스로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었을 정도라고 한다.

 ◇본과 1, 2학년 시험준비 파워포인트 수만장 

실제로 서울대 의대생들의 학습량은 어마어마하다. 본과 3학년에 재학 중인 김성환(28)씨는 “본과 1,2학년 때 시험을 보기 위해 봐야 할 파워포인트(PPT)는 몇 만장으로 파워포인트를 출력해 쌓으면 높이가 160㎝나 된다”며 “나름 공부라면 자신이 있는데 이렇게까지 공부를 많이 해야 하는지 회의가 들을 정도로 공부량이 상상을 초월한다”고 전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 의대생 K(26)씨는 “고등학교 시절 아무리 못해도 전교 5등 밖으로 밀린 적이 없어 자신 있었는데 현재 성적은 겨우 중위권을 유지하는 정도”라며 “서울의대를 다니면서 세상에는 나보다 머리가 좋은 사람이 많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의대 입학 전까지 ‘수재’,‘영재’소리를 들었던 학생들이라 성적에 유난히 민감하다고 말한다. 방영주 서울대병원 혈액종양학과 교수는 “의대 오리엔테이션 때 학생들과 학부모들에게 아무리 공부를 잘한다고 해도 1등도, 100등도 할 수도 있는 곳이 서울대 의대라고 말하면 모두 자기 얘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실제 점수가 하위권으로 처지면 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친구들이 많다”고 말했다. 방 교수는 “이런 친구들은 의대에 입학하기 위해 이미 모든 에너지를 쏟아 내 ‘방전’된 친구들”이라며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며 수동적으로 공부를 한 친구들이 의대에 입학하는 일이 늘고 있어 걱정”이라고 말했다.‘SKY 캐슬’에서처럼 다른 사람의 조력으로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상당수라는 사실을 짐작하게 한다.

 ◇‘피ㆍ안ㆍ성’ 경쟁 치열… 본과 탈락자 속출 

서울대 의대생들은 의대생활이 고3생활의 연속이라고 입을 모은다. 학점이 좋지 않으면 인턴과 레지던트 선발에서 밀리기 때문이다. 이들은 그래서 학점을 졸업할 때까지 관리해야 하는 ‘내신점수’라고까지 표현한다. 외부에서는 의례적인 통과시험으로 간주하는 ‘의사국가시험’ 점수도 인턴과 레지던트 채용 때 반영되기에 허투루 준비할 수 없다. 학점과 의사국가시험 점수가 좋지 않으면 자신이 원하는 진료과에 갈 수 없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서울대 의대생들도 육체적으로 힘든 ‘흉ㆍ비ㆍ외ㆍ산’(흉부외과, 비뇨기과, 외과, 산부인과)보다 ‘피ㆍ안ㆍ성’(피부과, 안과, 성형외과) ‘정ㆍ재ㆍ영’(정신건강의학과, 재활의학과, 영상의학과)으로 불리는 인기과를 가고 싶어하는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워낙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본과에서도 탈락자가 속출한다. 서울대 의대에서는 한 과목이라도 F를 받으면 학년을 유급한다. 까딱 실수했다가는 동급생들을 ‘선배’로 모셔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는데 자존심 센 이들이 버터내지 못한다. 만인의 선망을 받으며 입학한 서울대의대생(정원 160명)중 매년 본과 1~2년 학생 중 10명 정도가 성적 부진으로 짐을 싼다고 한다. 본과에서는 2주마다 시험을 보는데 ‘의사가 되겠다’는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는 버텨낼 수 없다는게 재학생들의 한결같은얘기다.

배우자감으로 첫 손가락에 꼽힐 것 같은 이들의 연애와 사랑은 어떨까. 이씨는 “서울대는 물론 타 대학 여학생들을 만나 연애를 하는 친구들이 많다”면서도 “공부할 것이 많아 여자친구에게 잘해주지 못해 결국 헤어지는 친구들도 많이 봤다”고 말했다. 김성환씨는 “서울대 의대가 보수적이긴 하지만 캠퍼스 커플들은 자유롭게 티를 내면서 교제를 한다”며 “공부량이 워낙 많기는 하지만 의대도 사람 사는 곳이고, 우리도 꿈 많은 대학생”이라고 말했다.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메디 스토리’는 의사, 간호사 등 의료계 종사자들이 겪는 애환과 사연, 의료계 안팎의 이야기 전하며 격주 월요일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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