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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결국 나를 위한 일이었다고 생각하자

입력
2019.02.19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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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 초상화
한비자 초상화

법률상담을 하다 보면 분쟁의 저 밑바닥엔 상대에 대한 야속함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음을 알게 된다. 부모가 자식에게, 반대로 자식이 부모에게 느끼는 야속함. 사장이 직원에 대해, 직원이 사장에 대해 느끼는 야속함. ‘야속하다’의 의미를 찾아보니 ‘무정(無情)한 행동이나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이 섭섭하게 여겨져 언짢다’라고 되어 있다. ‘무정’이란 단어의 의미를 다시 찾아보니 ‘남의 사정에 아랑곳 없다’고 되어 있다. 남의 입장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자기 입장만 생각하고 고집하는 사람과의 관계는 얼마나 힘들까.

문득 ‘무정’이라는 말에 내 감정과 판단이 개입돼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왜 내 입장을 충분히 생각해 주지 않는 거야’라는 원망 속에는 ‘당신은 내 입장을 헤아려야 한다’는 당위(當爲, 마땅히 그러해야 함)가 포함돼 있고, 그런 당위에는 ‘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해주는데...’가 전제된 경우가 많다. 나 역시 다양한 형태의 야속함을 느끼며 살았는데, 언젠가 이 마음을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글귀를 발견했다. 한비자 외저설 좌상 편에 나온다.

‘夫挾相爲則責望 自爲則事行(부협상위즉책망 자위즉사행)’. ‘서로 남을 위한다고 여기면 책망을 하게 되나, 자신을 위한다고 생각하면 일이 잘 되어 간다’는 뜻이다.

한비자는 그 예로 두 가지를 드는데 첫 번째 예는 부모 자식 사이다. 어린아이일 때 부모가 자식에 대한 돌봄을 소홀히 하면, 자식은 자라서 부모를 원망한다. 반대로 자식이 장성하고 어른이 되어 부모 봉양을 소홀히 하면 부모는 이에 대해 노여워하고 꾸짖는다. 무릇 자식과 부모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다. 그럼에도 이처럼 서로 원망하고 꾸짖게 되는 것은 모두, 내가 상대방을 위해 무언가를 베풀어 준다는 것만 생각하고 있을 뿐, 그 일이 나 자신을 위한다는 생각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예는 일꾼을 써서 농사를 짓는 땅주인 이야기다. 일꾼을 고용해 씨를 뿌리고 농사를 지을 때 주인은 자기 돈을 써서 일꾼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품삯을 주는데, 주인이 이렇게 하는 것은 일꾼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일꾼들을 잘 대해주면 그들이 밭을 갈 때 깊이 갈 것이고, 김을 맬 때 완전하게 맬 것이며, 이는 결국 주인의 이익으로 귀결된다. 일꾼이 있는 힘을 다해 애써 김매고 밭두둑과 논길을 정리하는 것 역시 주인을 위해서가 아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을 하면 주인이 주는 음식도 맛있게 먹을 수 있으며, 돈도 잘 벌 수 있기 때문이다.

한비자는 결국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고 일을 시키면서도, ‘자신이 베푸는 것(또는 베푼다고 생각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명심한다면, 굳이 남을 원망하거나 책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이런 말로 마무리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일을 하거나 베풀어 줄 경우 자기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는 마음으로 하면 먼 월(越)나라 사람과도 쉽게 부드러워 질 것이지만, 자기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뭔가 은혜를 입힌다고 생각하면 부모 자식 사이라도 서로 멀어지고 원망하게 될 것이다.’

한비자는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이익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유의해서 관찰하면 큰 오판(誤判)을 피할 수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런 한비자 특유의 인간관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나는 한비자의 이 관점이 전적으로 옳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당신에게 그렇게까지 했는데 당신이 내게 이럴 수 있어?’라는 야속한 마음을 먹기 전에 ‘내가 당신에게 잘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 나 스스로도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꼈고, 따지고 보면 내 마음 편하려고 그랬던 부분도 있어’라는 데까지 생각이 미칠 수 있다면 사람으로 인한 상처는 많이 줄어들지 않을까.

조우성 변호사ㆍ기업분쟁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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