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과후 돌봄 지문인식기 출석 확인…과도한 개인정보 수집 반발
“단지 간편하고 안전하다는 이유만으로 아이들 지문까지 받는 건 지나치게 행정편의주의적 발상 아닌가요?”
“아이들 부모 동의도 받을 예정입니다. 돌봄 서비스의 공백을 막기 위한 것인데 그게 꼭 인권침해이기만 한 걸까요?”
17일 서울 성북구청에 따르면 ‘지역아동센터 지문인식기 도입’을 둘러싼 논쟁이 지난 한 주 동안 거세게 일었다.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돌봄이 필요한 초등학생과 청소년을 위해 급식ㆍ교육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비영리복지시설이다. 성북구청은 올해 2,400만원의 예산을 편성, 관할 지역 내 센터 27곳에 지문인식기를 설치키로 했다. 아이가 지문인식기를 이용해 출석이 확인되면 부모에게 자녀가 나가고 들어왔음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도록 했다. 아이들 안전을 좀 더 확실하게 챙겨서 부모가 안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이 계획은 곧바로 저지당했다. 지역아동센터협의회는 “구청이 지문 같은 아이들 생체정보를 반강제로 채취하는 것은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이며 사생활 침해”라며 반대하더니 지난 12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까지 냈다. 그 다음날 열린 성북구청 내 인권위원회도 “인권 침해 소지가 덜한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며 협의회 손을 들어줬다.
이런 논란은 성북구청만의 일이 아니다. 방과후 돌봄 공백, 아이들 안전에 대한 높은 관심 때문에 학교나 지역아동센터 차원에서 지문인식기를 이용해 출입을 통제하거나 출석 여부를 확인하려는 시도가 늘고 있어서다. 부모들의 불안감을 불식시키기 좋은데다, 지문 인식은 아이들이 쓰는 데 별 다른 어려움이 없는 방식이어서다.
그래서 성북구청에 앞서 대구교육청과 구미시도 올해 관내 초등학교와 지역아동센터에 지문인식기를 도입하려 했다. 추진 명분은 비슷하다. 대구교육청은 ‘외부인의 무단 출입 방지’를 내세웠다. 학생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구미시는 ‘급식비 유용 등 부정행위 방지’를 명분으로 삼았다. 아동들의 출입 시간을 알 수 있으면 급식비 과다 청구 같은 행위를 막을 수 있다고 봤다.
아이인데 벌써 지문을 수집해야 하느냐는 반발도 여전하다. 가령 국가인권위원회는 2011년 세종시가 ‘스마트 스쿨’ 사업의 일환으로 지문인식기를 통한 출결 관리 계획을 세우자 ‘대체재가 있으며 유출과 오남용 가능성이 있다’는 점을 들어 인권침해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대구교육청과 구미시도 ‘과도한 개인정보 수집’이란 반발에 밀려 지문인식기를 설치하지 못했다.
그나마 논란이라도 일어나는 건 지자체나 교육청 규모의 사업이라 그렇다. 개별 학교나 기관 차원에서 알아서 진행해버리면 논란이 일어날 여지 조차 없다. 실제 경기도의 경우 여러 학교에서 자체적으로 지문인식기를 설치,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문인식기를 운영하고 있는 한 초등학교 관계자는 “개인정보처리 동의서를 작성하는 절차를 거치는 것 외엔 별도의 신고 절차가 없는 것으로 안다”고도 말했다. 개별 학교들은 알아서 쓰고 있지만, 정작 경기교육청은 관련 자료나 통계를 관리하지 않고 있었다.
이 때문에 차라리 지문인식기에 대한 제대로 된 규정을 만들자는 지적이 나온다. 기존의 ‘개인정보보호법’은 공공기관이 목적 달성을 위해 불가피한 경우 본인 혹은 법정 대리인의 동의 하에 개인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 내용이 없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관리자 입장에서는 가장 저렴하고 확실한 방식이어서 자꾸 지문 인식에 의존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설치 기준, 관리 지침, 위반 시 처벌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명숙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아동 안전은 중요한 이슈이기 때문에 지문 이외에 다양한 방식으로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방안이 나올 것으로 본다”며 “법정대리인의 동의로 개인정보가 수집되는 아동은 본인 의사와 상관없는 피해를 입을 위험이 더 크기 때문에 이에 앞서 관리자의 책임 등에 대한 구체적인 지침을 세워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정준기 기자 jo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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