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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낙태 실태조사 현실과 괴리… 보건당국 ‘안전한 낙태’ 고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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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계 “낙태 실태조사 현실과 괴리… 보건당국 ‘안전한 낙태’ 고민해야”

입력
2019.02.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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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정부가 8년 만에 인공임신중절(낙태)이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는 실태 조사 결과를 발표 했지만, 의료계에서는 현실을 충분히 담지 못했다며 시대에 맞지 않는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낙태시술을 음성화함으로써 생기는 여러 부작용을 방지하고 여성 건강을 향상 시키려면 보건당국이 오히려 ‘안전한 낙태’를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4일 보건복지부의 ‘인공임신중절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낙태 건수는 약 5만건으로 2011년(16만8,000건)보다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그러나 의료계는 이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김동석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가임 여성이 줄고, 피임 기술의 발달과 문화 정착으로 임신이 전반적으로 줄긴 했지만 낙태를 하는 여성과 의사를 범죄자 취급하는데 실태조사에 솔직하게 답을 할 수 있겠느냐"며 "낙태가 음성적으로 이뤄지며 여성들이 부작용을 호소하는 등 의료계가 체감하는 현실적 어려움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모자보건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본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본인이나 배우자에 유전학적 정신장애가 있거나 △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강간 등에 의한 임신 △임신이 지속하면 산모 건강이 위험해지는 경우 등 5가지 사유의 낙태만 허용된다. 그러나 변화된 사회·문화적 현실을 감안하면 △경제적 또는 사회적 사유 △본인 요청의 경우도 인공임신중절술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36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낙태를 금지한 나라는 6~11개국에 불과하다. 경제적 또는 사회적 요구에 따른 낙태는 한국을 포함해 아일랜드, 뉴질랜드, 폴란드, 칠레, 이스라엘 등 6개국이 불허한다. 본인요청에 따른 경우는 한국, 영국,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일본, 핀란드, 뉴질랜드, 폴란드, 칠레, 이스라엘 등 11개국이 허용하지 않고 있다. 다만 아일랜드는 지난해 5월 국민투표를 통해 낙태금지를 규정한 헌법 규정을 폐지하기로 한 상태다.

의료계에서는 여성 건강을 위해선 낙태 시술도 의료서비스의 하나로 봐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윤정원 녹색병원 산부인과 과장(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여성위원장)은 “세계보건기구(WHO)는 ‘안전한 낙태를 위한 가이드라인’에서 인공임신중지를 하나의 의료서비스로 보고 의료계와 국가가 접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며 “낙태가 불법화 되어 있다 보니 의료진은 환자에게 제대로 된 정보를 줄 수가 없고, 여성들은 안전한 의료를 보장받지 못하는 일이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실제 이번 실태조사에서 전체 임신중절경험자 756명 중 자연유산유도약(미프진) 등을 통한 약물사용자가 9.8%(74명)로 집계됐는데, 약물사용자의 72%(53명)은 유산이 되지 않았다. 현재 약물을 이용한 인공임신중절은 불법이어서 확인되지 않은 약물을 사용한 여성들의 건강이 위협받는 사례가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윤 과장은 “여성들에게 최선의 의료 혜택을 제공하기 위해선 의료계도 낙태를 보건학적 관점에서 접근해야 하고, 담당부처인 복지부도 헌재에 낙태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밝히는 게 옳다”고 비판했다.

헌법재판소는 낙태한 여성과 의료인을 처벌하는 형법(제269조, 270조)에 대한 위헌법률심판을 진행 중인데, 지난해 각 부처에 의견 제출 요구 당시 복지부는 ‘의견없음’이라고 제출한 바 있다. 손문금 복지부 출산정책과장은 “지난해에는 인공임신중절에 관한 실태조사가 계획돼 있었기 때문에 이를 실행하는 부처로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기 위해 ‘의견 없음’으로 제출했다”며 “만약 헌재에서 다시 제출 요구가 온다면 부처에서 의견을 수렴하겠다”고 설명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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