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될지 모르겠네요.”
어쩌면 실례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고 싶었다. 사진 촬영을 위한 포즈를 부탁했다. 비보이 이정수(25)씨는 겸연쩍은 듯 팔과 어깨로 몸을 지지하고 다리를 들어올려 멈추는 ‘프리즈’ 동작을 취해 보였다. 느린 속도로 올라가는 다리는 흔들거렸다. “몸이 죽은 거지 머리가 죽은 게 아니거든요. 어떻게 하면 잘 추는 지 다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몸이 안 따라줄 때는 우울한 감정이 들긴 해요.” 간혹 슬럼프가 있다지만, 이씨는 그렇게 계속 춤을 추고 있었다.
이씨는 실력파 비보이다. 고등학생 때 ‘퓨전MC’ 크루에 들어가 스무 살도 되기 전인 2012년과 2013년 두 차례 세계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말 그대로 ‘승승장구’였다. 2014년 열릴 세계대회 ‘배틀오브더이어’가 다음 목표였다. 2013년 11월 18일, 국내 대표 선발전 준비에 한창이었을 때다. 3명을 밟고 뛰어올라 공중제비를 도는 동작을 연습하다 거꾸로 바닥에 떨어졌다. 2번부터 5번 경추를 다쳐 사지가 마비됐다. 춤은커녕 “일상적인 삶도 포기해야 한다”는 잔인한 진단을 받았다.
굴하지 않았다. 이후엔 기적에 기적이 거듭됐다. 처음엔 의사조차 수술 없이 몸을 움직일 수 없을 것이라 했다. 사고 일주일 후 엄지 발가락을 움직였다. 한 달 뒤엔 아기처럼 느리게 걸을 수 있게 됐다. 이 정도만 해도 놀라울 정도인데 이씨는 5개월 간 재활치료 뒤 다시 연습실로 나갔다. 근력은 예전의 30%에 불과했고, 주머니에 넣어둔 물건도 잘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감각은 둔해졌다. 그런 조건에서도 이씨는 매일 6시간의 연습을 소화해내며 비보이의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씨는 자신을 “그냥 비보이”라 부른다. 다치기 전과 다름 없이 ‘춤추는 이정수’가 바로 자신이라는 얘기다. 물론 차이는 있다. 지금은 장애를 가진 비보이들이 모인 국제 크루 ‘일어빌리티스(ILL-Abilities)’ 멤버이자 디제잉 그룹 ‘쿨라이크댓(Cool Like That)’ 소속 디제이 ‘크롭스’로 활약 중이다.
춤도 바뀌었다. “예전엔 제 특기가 ‘윈드밀’, ‘헤드스핀’ 같이 격렬한 동작이었거든요. 지금은 주로 ‘스레딩’을 해요.” ‘스레딩’은 바느질을 하듯 몸으로 만든 구멍으로 다른 신체를 빼내는 동작이다. 근력이 부족한 이씨에게 적합하다. 이씨가 ‘일어빌리티스’ 소속으로 나서는 공연에서도 이 동작을 선보이곤 한다. 신생아 신체 기형을 유발하는 입덧 방지약 탈리도마이드로 한쪽 다리가 발달하지 못한 채 태어난 칠레 비보이 ‘체초(Checho)’, 한쪽 팔과 한쪽 다리로 춤을 추는 네덜란드 비보이 ‘레도(Redo)’가 이씨 동료다. 3월부터는 장애인문화예술단체 ‘빛소리친구들’ 주관으로 열리는 장애인 대상 무용 교실에도 출강할 예정이다.
이씨가 춤을 포기하지 않은 건 간단한 이유다. 자신의 선택이 다른 이에게 희망이 되길 기대해서다. “제 몸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연을 하는 게 솔직히 부끄러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게 남들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다는 생각하면 춤을 멈출 수가 없어요.”
홍인택 기자 heute128@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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