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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5°] 제국의 위선

입력
2019.02.14 18:00
수정
2019.02.14 18:2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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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약 2주 앞둔 14일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JW 메리어트(Marriott) 호텔. 이 호텔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숙소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27~28일 하노이에서 열릴 예정이다. 하노이(베트남)=뉴스1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약 2주 앞둔 14일 베트남 하노이에 위치한 JW 메리어트(Marriott) 호텔. 이 호텔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숙소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북미 정상회담은 27~28일 하노이에서 열릴 예정이다. 하노이(베트남)=뉴스1

자고로 그들은 얼마나 확신으로 충만했는지 모른다. 프랑스인 소설가 크리스토프 바타이유가 스물한 살에 쓴 ‘다다를 수 없는 나라’(1993)는 마지막 봉건 왕조가 움트던 18세기 말 무렵 베트남이 배경이다.

실권한 섭정공 응우옌 푹 안은 1787년 루이 16세의 프랑스에 일곱 살 아들을 보낸다. 군대와 선교사들의 힘으로 하느님의 왕국을 회복해달라는 세속적인 간청과 함께였다. 황제는 거절했고, 알현한 지 며칠 뒤 아이는 죽었다. 그 아이가 제 가족뿐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도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긴 주교는 ‘무신앙의 질곡’에서 베트남이 구원되기를 바라는 이들을 모았다. 하느님의 왕국은 크면 클수록 좋았다.

사이공(호찌민)에 닿자 파견대가 쪼개졌다. 군인들은 무장한 농민들에 의해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자기들 나라에서도, 전쟁에서도 먼 곳에서 외로이 죽었다. “군인들은 베트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이 점은 용서 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고 바타이유는 적었다. 그러나 교회도 일방적인 건 마찬가지였다. 소설을 번역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는 “후일의 역사는 선교사들의 활동이 제국주의의 확장과 무관하지 않음을 주시하게 된다”고 책 말미에 썼다.

그들은 믿었을 것이다. 선(善)으로 세상을 채우기 위해서라면 수단이 뭐여도 상관없고 가장 효율적인 도구는 힘이라고 말이다. 하느님 영토가 늘어나는 데 투입됐던 유럽 제국들의 신념과 열정은 그러나 맹신과 광기로 바뀌기 일쑤였다. 단순하고 선명하게 정의(定義)된 정의(正義)는 견고하고 구심력이 강하다. 악(惡)의 척결보다 숭고한 사명이 어디 있는가. 하지만 보라. 중세 십자군 전쟁과 마녀사냥이 흥건한 피 말고 대체 남긴 게 뭔가.

이제 선은 힘의 다른 이름이 된 듯하다. 독선의 제국에게서 패권을 계승한 강대국들은 자기들이 선하다고 믿을까. 더 이상 선은 추구되는 게 아니다. 쟁취하는 것이다. 힘이 곧 선이다. 하지만 선악 구도가 사라져서는 안 된다. 인류는 진보해 왔다는 게 우리 믿음이다. 국가 간이면 몰라도, 적어도 나라 안에서는 약육강식이라는 남루한 진실이 드러나선 안 된다. 그래서 위선의 시대다.

일제(日帝) 비호로 강점기 식민지인들을 강제 동원한 기업이 피해자에게 배상해야 한다는 상식적 인권 문제를 일본이 기어이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려는 것도 초강대국 미국 주도로 강대국 이익이 늘 관철되게끔 짜인 전후(戰後) 질서가 배신하지 않으리라는, 입맛대로 약소국 청구권을 말소한 샌프란시스코 조약 체제의 위계(位階)를 서방이 전복시킬 리 없다는 심산에서일 것이다. 국제법이 힘에 좌우된다는 건 비밀도 아니다.

수십 년 동안 미국은 악이나 야만이라는 낙인을 찍어 북한이 핵을 못 갖게 만들려 했다. 애초 역할이 북한은 범죄자, 자기는 경찰이었다(브루스 클링너 미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 핵 보유권이 타고나는 거냐는 비보유국들의 반발에 차츰 줄여가겠다고 약속했지만 자신에게는 너그러웠다. 자기가 하면 불륜도 로맨스라는 ‘내로남불’이었다. 현재 미 조야에 만연한 비핵화 회의론은 이런 선악관의 변종이다. 흐릿하고 복잡한 세계의 입체성에 조응하는 필연적 의심이라기보다, 종교적 교조와 편협한 경험에서 비롯된 ‘확실한 불신’에 가깝다.

2017년 방한 국회 연설 당시 “문명국을 대신해 말하겠다” 같은 선악 이분법적 대북 수사(修辭)들로 십자군 꾸리듯 비장함을 연출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해 대화에 나서고부터는 상인(商人) 출신다운 면모를 보이고 있다. 오히려 마음이 놓인다. 상대를 절멸하려는 신념 전쟁 대신 계산적이고 실용적인 거래가 북미 사이에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소설의 프랑스 선교사는 베트남에서 자신을 구속하던 열망에서 벗어났다. 27~28일 하노이에서 재회하는 북미 정상 둘 모두 더 자유롭고 냉정해졌기를 기대한다.

권경성 정치부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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