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감사 대상 기업에 적용되는 표준감사시간에 상한제가 도입된다. 자산 200억원 미만 비상장사는 표준감사시간 적용이 3년간 유예된다. 회계업계는 적용 유예 기업이 전체 대상 기업의 40%에 달하는 등 감사 품질을 높이려는 제도의 취지가 퇴색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반면, 경제단체들은 감사비용 증가 부담을 져야 하는 기업 입장이 반영되지 않았다며 반발하고 있어 시행 과정에 진통이 예상된다.
한국공인회계사(한공회)는 회계감사인이 투입해야 할 표준감사시간 최종안을 14일 발표했다. 표준감사시간은 작년 11월 외부감사법이 개정되면서 도입된 제도로, 기업별로 적정한 감사시간을 정해 감사의 품질을 끌어올리는 게 목적이다. 올해 1월 1일 이후 개시하는 사업연도부터 적용된다. 표준시간은 기업 규모 등을 기준으로 한공회가 산정하는데, 국내 대표 기업들이 속한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경우 감사시간이 1.5배가량 늘어나게 된다.
최종안에는 한공회가 제안한 초안에 없던 ‘상승률 상한제’가 포함됐다.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표준감사시간은 직전 사업연도 감사시간의 150%, 그 외 기업은 130%를 초과하지 않도록 제한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감사시간이 100시간이었던 자산 2조원 이상 상장사의 감사인은 올해 감사에 150시간 넘게 쓸 수 없는 셈이다.
자산 규모(200억~2조원)에 따라 나눴던 기업 그룹은 초안의 6개 그룹이나 지난 11일 공청회에서 제시된 9개 그룹보다 세분화한 11개 그룹으로 확정됐다. 이에 따라 자산 규모별로 감사시간을 보다 세밀하게 구분 적용할 수 있게 됐다. 다만 자산 규모 200억원 미만 기업(그룹11)은 2022년까지 3년간 표준감사시간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추후 유예 종료 여부를 논의하기로 했다. 그룹11에 해당하는 기업은 1만300개로 전체 표준감사시간 적용 대상 기업(2만6,046개)의 39.5%다.
상승률 상한제와 적용 유예 그룹 선정은 한공회의 고육지책이라는 평이다. 지난 1월 말 표준감사시간 초안이 나오자 기업들은 “감사시간이 늘어나 비용이 부담된다”는 불만을 계속 제기했다. 두 차례 진행된 공청회에서 표준감사시간 도입 자체에 제동을 거는 분위기까지 연출되자 한공회가 내놓은 타협책인 셈이다. 한공회 관계자는 “표준감사시간 제도를 안착시키기 위해서는 감사 대상인 기업들의 요구를 반영할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회계업계에선 표준감사시간의 의미가 퇴색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중견회계법인 임원은 “표준감사시간은 양질의 감사를 위해 투입하는 최소 시간으로, 기업 상황에 따라서는 그 이상의 시간을 감사에 쓸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라며 “최종안에 포함된 상한제와 적용 유예 허용은 표준시간제 취지에 반해 감사 범위를 제한하는 장치”라고 지적했다. 반면 한국상장사협회ㆍ코스닥협회ㆍ코넥스협회는 공동입장문을 내고 “최대 이해관계자인 기업 측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확정 발표한 안이므로 수용을 거부한다”고 반발했다.
이상무 기자 allclear@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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