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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문화] 근대건축물을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

입력
2019.02.15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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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되고 낮은 건물은 독특한 경관을 만들어 낸다. 그리고 그 도시를 살아간 사람들의 오랜 역사와 삶의 켜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어 새로 지은 고층아파트와 높은 상가건물로 획일화되고 색깔을 잃어 가는 도시의 소중한 자원이 된다. 오래된 건물을 도시에 남겨 두는 것은 가치 있는 일로 생각되지만, 그 건물의 경제적 가치는 인정받지 못했다. 철거의 대상이 됐고, 그렇게 100년 안팎의 건물들은 수없이 철거됐다.

조선시대와 그 이전에 지어진 건물들은 문화재로 지정돼 보호를 받지만, 그 이후에 지어진 건물은 그렇지 못했다. 근대건축물의 철거가 잇따르자 문화재청은 무분별한 철거를 막기 위해 2001년에 등록문화재 제도를 만들었다. 이 제도에 따르면 건축주나 지자체 등이 50년 이상된 건물을 등록문화재로 신청할 수 있다. 등록문화재가 되면 건축주는 세금과 건물 수리의 일부를 지원받는다. 하지만 이 정도의 지원은 건물을 철거하고 높은 건물을 지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경제적 이득에 비해 낮은 경우가 많았다.

2005년 12월, 서울에서 유일하게 남아 있던 극장 근대건축물인 스카라극장이 철거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극장의 철거를 앞당긴 것은 등록문화재 제도였다. 문화재청은 스카라극장을 등록문화재로 등록예고했고, 재산상의 불이익을 우려한 건물주는 등록예고기간에 극장을 철거했다. 이는 스카라극장만의 일은 아니었다. 스카라극장이 철거되던 당시 등록문화재로 지정된 건물이 228개였는데, 이 숫자와 맞먹는 191개의 근대건축물이 등록예고기간에 훼손, 철거됐다. 등록문화재 제도는 그동안 사각지대에 있던 근대건축물의 보존에 일정 부분 역할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은 근대건축물이 수두룩하다. 모든 근대건축물을 등록문화재로 지정할 수도 없고, 그것이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근대건축물이 살아남으려면 제도의 개선과 함께 건물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건물을 지키고 활용하는 것이 소유주의 이득으로(경제적이든, 다른 방식이든) 이어져야 한다.

최근 들어서는 근대건축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근대건축물을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많은 건물들이 리모델링을 거쳐 카페로, 공방으로, 박물관으로, 특색있는 주거공간으로 되살아났다. 인천 중구에는 역사문화거리가 조성됐고, 대구 중구의 ‘근대골목투어’는 ‘아시아 도시 경관상’을 비롯한 많은 상을 받았고, 군산의 개항장은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오래된 건물들은 그 건축물의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에 의해 운명이 갈리었다.

인천 중구청은 2012년과 2015년, 2016년에 각각 아사히양조별관, 동방극장, 애경사 등 의미있는 근대건축물을 주차장 조성을 위해 철거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장군동에는 1909년에 지어진 양조장 ‘삼광청주’가 철거되고 다가구 주택이 생겼다. 대전역 뒤편에 있는 100여년 된 철도관사마을의 40여채 건물 중 상당수가 지난해 도로 공사를 이유로 철거됐고, 남아 있는 건물은 삼성4구역 재개발로 철거될 운명이다. 이런 사례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최근 손혜원 의원 사태로 목포의 오래된 건물들이 관심을 받고 있다. 한쪽은 건물을 지키기 위해 건물을 샀다고 하고, 한쪽은 투기를 위해 건물을 샀다고 한다. 놀라운 일은 양쪽의 주장 모두 오래된 건물을 허물지 않는 것이 가치(경제적 가치든 뭐든)있는 일이라는데 동의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변화다. 철거 대상으로만 보았던 오래된 건물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이 달라진걸까? 아직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거나 철거 위기에 있는 근대건축물들은 목포에, 나주에, 강경에, 인천에, 전국 곳곳에 남아 있다.

최성용 도시생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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