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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상재 눈에 비친 19세기 미국 민주주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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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 이상재 눈에 비친 19세기 미국 민주주의는…

입력
2019.02.13 17:00
수정
2019.02.13 21:42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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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는 4년마다 교체되고 민이 주권”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의 유품인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외교자료 8점이 13일 공개됐다. 미국공사왕복수록(왼쪽부터), 미국 서간, 이상재 선생의 주미공사관 재직 시절 사진. 문화재청 제공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 선생의 유품인 주미대한제국공사관 외교자료 8점이 13일 공개됐다. 미국공사왕복수록(왼쪽부터), 미국 서간, 이상재 선생의 주미공사관 재직 시절 사진. 문화재청 제공

“미국 풍속은 민(民)을 주권으로 삼는다. 소위 군주는 4년마다 교체되고, 인민이 회의에서 차출한다. 그러므로 군주는 권한이 없고, 오로지 민의를 주로 삼을 뿐이다.”

독립운동가 월남(月南) 이상재(1850~1927) 선생이 주미공사관 서기관으로 근무한 1888년쯤 쓴 편지의 한 대목이다. 왕조의 나라 출신인 그의 눈에 당시 미국의 민주주의는 그렇게 생경했다. 이 선생이 서기관 시절 주고 받은 편지 38통 묶음인 ‘미국서간’, 공사관 업무편람인 ‘미국공사완복수록’을 비롯한 문헌, 사진 등 사료들이 13일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 선생의 종손인 이상구(74)씨가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 사료를 기증했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지난해 미국 워싱턴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공사에 쓸 고증 자료를 찾다가 사료의 존재를 확인했고, 이씨가 흔쾌히 기증했다고 한다.

이 선생은 초대 주미전권공사 박정양과 함께 1888년 1월 공사 서기관으로 부임했다. 청의 압력으로 같은 해 11월 귀국할 때까지 공사관 개설을 위해 애쓴 것을 비롯해 다양한 외교 활동을 벌였다. 공개된 사료는 당시 조선 외교관들의 생생한 활동 기록인 셈이다.

미국공사왕복수록에는 1883년 체스터 아더 미국 대통령이 초대 주한공사 루시우스 푸트를 조선에 파견하며 고종에 보낸 외교문서 등이 포함돼 있다. 미국 뉴욕 법관인 ‘딸능돈’ 등이 1888년 조선기계주식회사를 설립해 철로, 양수기, 가스시설 등 설치를 조선에 제안하면서 쓴 규약과 약정서 초안은 새로운 사실을 일러준다. 규약의 첫 대목은 “우리가 철로를 조선 경성 제물포 사이에 설치하는데, 무릇 해당 개설 도로와 역사 건축 부지의 토지는 특별히 정부에서 면세를 허용할 일…”이다. 일본의 경인선 완공(1899년)으로부터 약 10년 전에 조선과 미국이 철도 부설을 논의했다는 뜻이다. 그 동안은 미국인 모스가 1897년 조선에서 철도 부설권을 받았고, 이를 1년 뒤 일본에 넘긴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선생의 자료로 한국 철도사의 첫 장을 다시 쓰게 된 것이다.

미국서간으로는 당시 공사관의 생활을 복기할 수 있다. “공관은 매년 임대료를 780원씩으로 정하고 입주하였다. 관내의 일용 집기는 1천 5백여 원으로 구입해두었다. 조∙석반은 관내에서 지어 먹는다.” 미국 생활이 팍팍했다는 것도 알려 준다. “소위 미국 물정은 이곳에 온 이후 언어와 문자가 모두 통하지 않아서 듣거나 아는 것이 전혀 없다.” 이 선생의 전기 자료, 워싱턴 시절 사진, 박정양의 서양 견문록인 ‘미행일기’ 초록으로 알려진 문헌 등도 함께 공개됐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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