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양반들이 공부하고 수양하고 교류하면서 자신을 완성한 공간인 사랑방이 현대에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전통의 현대화가 특기인 양태오 디자이너가 이번엔 조선시대 사랑방을 현대적으로 해석했다. 14일 서울 종로 가회동 예올에서 열리는 ‘사랑방, 그 안에 머무는 것들’ 전시에서다. 12일 만난 양 디자이너는 “사랑방은 근대로 넘어오면서 기능을 상실해 사라진 공간”이라며 “사랑방에 깃든 선비정신도 찾아볼 수 없게 됐다”고 말했다.
한옥처럼 꾸민 전시장엔 옛것과 새것이 공존한다. 한편에 놓인 의자를 보자. 좌식이 아닌 입식 의자이되, 의자 다리를 소반 다리처럼 만들었다. 책상도 서안(사랑방에서 쓴 낮은 책상)과 연상(문방 용품을 담은 서랍장)의 요소를 결합해 만들었다. ‘기능’은 포기하지 않았다. 고풍스러운 외양에 콘센트 단자를 숨겨 뒀다.
밤늦게까지 사랑방을 밝힌 건 촛불이었다. 촛대에 청동 반사판을 설치해 빛을 은은하게 바꾸었다. 양 디자이너는 초는 램프로, 청동 반사판은 유리로 바꾸었다. 유리를 통과해 나오는 부드러운 빛이 사랑방처럼 푸근하다. 옛 편지꽂이인 고비는 거울과 받침대를 달아 벽걸이 수납함으로 바꾸었다. 양 디자이너는 “고가구와 전통 소품들은 뽐낼 수 있지만 뽐내지 않는 겸손한 선비 같다”면서 “화려하고 빠른 현대를 살면서 사랑방에 밴 선비 정신을 상기해 보는 기회를 만들려고 전시를 기획했다”고 말했다.
선비 정신은 그러나 여성을 배척한다. 가부장제의 정점에 있었던 선비는 여성을 차별했으며, 사랑방은 오직 남성들의 공간이었다. 전시장에 조선시대 여성 시인 이옥봉이 시 ‘몽혼’을 나지막이 읊는 영상을 튼 것은 사랑방에서 배제된 존재인 여성을 환기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전시는 3월14일까지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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