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한라산을 가로질러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연결하는 ‘5ㆍ16도로’ 명칭 변경이 또다시 무산됐다. 5ㆍ16도로는 군사쿠데타를 미화한다는 이유 등으로 그동안 수차례 명칭 개정 시도가 있었지만 번번이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12일 서귀포시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최근까지 5ㆍ16도로명 변경을 위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견 수렴에 나섰지만 응답자가 적어 사실상 도로 명칭 변경 절차가 중단됐다.
시는 앞서 지난해부터 제주지방법원 등기소, 제주세무서 등 유관기관의 협조를 얻어 5ㆍ16도로 주변 건물주와 건축주, 세대주 등 현황 파악에 나섰다. 이는 도로명주소법에 따라 도로명 변경 의견을 당국에 제출하기 위해서는 해당 도로명을 사용하는 건축주나 사업주, 세대주 등 주민 1/5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의견이 제출되더라도 최종적으로 도로명 변경을 위해서는 다시 이들 주민 1/2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시는 실태파악을 통해 도로명 ‘5ㆍ16로(路)’가 부여된 건물의 건축주나 사업주, 세대주 등이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합쳐 모두 1,200여가구로 파악되자, 이 중 서귀포시에 위치한 700여가구에 우편을 발송해 5ㆍ16도로명 변경에 대한 의견을 수렴했다. 시는 이어 서귀포시 지역 해당 주민들이 도로명 변경 의견이 우세할 경우 제주시와 협의해 명칭 변경 절차를 진행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시가 의견 수렴을 진행한 결과 전체 700여가구 중 의견을 제출한 가구는 100가구도 되지 않아 명칭 변경 절차 진행이 더 이상 어렵게 됐다.
5ㆍ16도로는 제주시 남문로터리에서 한라산 동쪽 해발 750m 고지를 가로질러 서귀포 시내를 잇는 너비 15m, 길이 40㎞ 왕복 2차로였다. 1961년 5ㆍ16군사쿠데타 이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본격적인 정비 작업이 이뤄졌고, 1969년 ‘횡단도로’란 명칭으로 정식 개통했다. 이어 일반국도노선지정령에 의해 1971년 8월 ‘국도 제11호선’의 명칭이 부여되고, 2007년 ‘지방도 제1131호선’으로 명칭이 바뀌었지만 도민들은 여전히 ‘5ㆍ16도로’라고 즐겨 부르고 있다. 2009년에는 도로명주소법 개정에 따라 ‘5ㆍ16로’란 도로명이 부여됐다. 5ㆍ16도로는 박정희 대통령 정부 당시 군사정권이 쿠데타를 정당화하고 기념하고자 붙인 명칭으로 추정되지만, 작명 주체 등에 대한 자료는 없다. 그러나 군사쿠데타를 미화한다는 지적 속에 1998년 김대중 국민의정부 출범 때부터 명칭 변경 논란을 겪었다.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태가 터진 2016년 12월에는 5ㆍ16도로 기념비가 훼손되는 일이 생기면서 논란이 재연되기도 했지만 유신시대 잔재를 청산하자는 의견과 익숙한데 굳이 바꿔야 하느냐는 의견이 상존하면서 명칭 변경은 이뤄지지 못했다.
시 관계자는 “5ㆍ16도로명 변경에 대한 여론이 있어 도로명주소팀에서 수개월간 의견 수렴 과정을 거쳤지만, 응답자가 적어 사실상 이번에도 명칭 변경 시도는 무산된 셈”이라고 말했다.
김영헌 기자 taml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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