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을 보내고 만난 가녀린 초승달이 참 곱다 싶었는데 벌써 반달이 차오릅니다. 이내 정월대보름입니다. 문득 어릴적, 부럼과 함께 잣불을 붙이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바늘에 잣을 꿰어 불을 붙이고 소원을 빌기도 하고, 그 불꽃의 모습으로 한 해의 운세를 점쳐보기도 헸던 기억 말입니다. 때론 실로 12개를 길게 꿰어 12달의 운을 예측하기도 했지요.

이래 저래 잣은 겨울에 더욱 친근한 듯 합니다. 햇 잣의 향기로움을 각별하게 느끼기도 하고, 수정과에 동동 뜬 잣을 맛보기도 합니다. 국립수목원에서 일하기 시작한지 오래지 않았던 때였던 것 같습니다. 점심 산책길에 갑작스레 툭툭 떨어진 잣송이들을 주워들고 얼마나 신기하고 반가웠던지요. 잣송이 하나에 잣알은 보통 100~150개, 많게는 200개도 들어있다고 하니 올 겨울은 이 잣송이에서 잣을 얻어 써야지 하고 욕심을 내다가 꽤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시도하다가 결국 손에 작은 상처도 나고 다시는 잣이 비싸다는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결심도 했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니 잣송이와 씨름하던 하루 내내 퍼져나오던 잣 향이 아직도 생생하게 느껴집니다.

이 소중하고 익숙한 잣은 당연히 잣나무에서 따는 열매인데 평소 나무와 가까이 지내는 분이 아니라면 산에서 잣나무를 만나고 알아보는 일이 흔하고 당연하지는 않습니다. 우선 잣나무는 우리나라에서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분포하며 주로 고산에 자랍니다. 잣나무의 남쪽한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지리산엔 1,000m이상의 높은 곳에서 자라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추워질수록 분포면적이 많아지고 고도도 낮아집니다. 고구려 시대까지 우리의 땅이었다고 하는 더 북쪽으로 가면 거의 평지에 숲을 이루고 있는 잣나무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물론 다른 지역에서도 볼 수 있는데 빽빽하게 숲을 이룬 곳들은 대부분 잣이나 목재를 얻기 위해 부러 심은 조림지역이죠. 잣나무는 소나무와 한 집안의 형제나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겨울의 올곧고 늘 푸른 기상으로 치자면 잣나무가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잣나무의 수피가 아닌 목재가 아름다워 홍송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남쪽에서는 목재생산을 목적으로 심습니다. 예전 광릉숲에서 보내는 편지에도 썼듯이 기후가 온난하면 종의 생존에 대한 위기감이 적어지고 그 환경에 안주하여 후손을 만들어 퍼트리고자 하는 노력을 소홀히 하므로 목재와 잣을 동시에 얻고자 하는 욕심은 내려놓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했었는데, 요즈음 그것이 남부지방의 문제만이 아닐듯하여 걱정입니다.

온난해지는 기후변화 탓에 사과나무 산지가 자꾸 북쪽으로 올라오듯 잣나무의 잣 생산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서이지요. 게다가 이러한 기후의 변화들은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유례없는 겨울가뭄이 참 걱정입니다. 지금쯤 숲엔 눈인 쌓여 있고, 그 눈들이 산불의 위험을 해소하고 봄이면 조금씩 녹아내려 나무들이 싹을 틔우며 살아가는데 활용되어야 하지만 하도 비가 오지 않아 숲은 먼지가 날 만큼 메마르고 한겨울에 나는 산불소식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한 해의 액운을 쫓아내고 건강과 풍요를 기원하는 정월대보름의 달집태우기나 쥐불놀이도 즐거움이 아닌 큰 걱정이 되었습니다. 좀 거창하긴 하지만, 올 정원대보름은 지구의 안녕을 위한 나의 작은 실천들을 결심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안녕을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장

공감은 비로그인 상태에서도 가능합니다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