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과 이탈리아를 휩쓸고 있는 우파ㆍ포퓰리즘 세력이 나름의 ‘애국주의’ 저출산 극복대책을 잇따라 채택하고 있다. 저출산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이민 확대’로 해결하는 대신 오로지 애국심 많은 자국 여성들의 출산율 제고로 풀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들은 또 ‘자력갱생’ 출산장려 정책의 성공을 위해 소득세의 영구 면제 등 파격 조치도 내놓았다.
11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유럽의 반이민 정서를 주도하는 헝가리가 ‘네 자녀 엄마에게 평생 소득세 감면’이라는 정책을 내놓았다. 우파 민족주의자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이 같은 정책을 발표하면서, “헝가리를 이민자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더 많은 아기를 낳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거스를 수 없는 저출산 현상 속에서 유럽에서 지금까지 이 문제에 대한 유일한 대응은 ‘이민자 수용’이었다. 지난해 1월 유럽연합(EU) 28개국 인구는 5억1,260만명으로 1년 전보다 110만명 더 늘었는데, 모두 이민자 유입에 따른 것이다. 같은 기간 EU 사망자(530만명)가 출생자(510만명)보다 20만명 많았지만, 이민자가 130만명이나 늘었다.
그러나 반 이민 정서가 고조된 사회 분위기를 이용해 ‘자국 출산율을 높여 알아서 해결하자’는 출산 포퓰리즘이 부상하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이날 국정연설에서 “서유럽 국가는 이민 유입으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만, 우리는 헝가리 아이를 원한다”면서 심각한 저출산에도 불구하고 이민 유입을 허용할 생각이 없다고 공언했다. 현재 헝가리 여성들의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자녀 수)은 1.45명으로 유럽연합(EU) 평균(1.58명)을 밑돌고 있다.
오르반 총리는 ‘4자녀 소득세 면제’ 이외 다른 파격 대책도 제시했다. 40세 미만 여성이 처음 결혼하면 최고 1,000만포린트(3,990만원)를 무이자로 대출해준 뒤 아이 2명을 낳으면 대출액의 3분의1을 면제키로 했다. 또 3명을 낳으면 전액을 탕감키로 했다. 이외에도 건강보험 예산 25억달러(약2조8,093억원) 증액, 주택보조금 지급, 7인승 자동차 구입 지원 등의 정책을 제시했다.
헝가리가 가장 두드러지지만 이런 현상은 유럽 곳곳에서 확인된다.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정부가 3자녀 부모에게 임대료 없이 농지를 빌려주기로 한 것도 대표적이다. 2019년에서 2021년 사이 태어날 셋째 자녀의 부모에게 20년간 농지를 제공하고, 농지 주변에 주택을 구매하면 최대 20만유로(2억5,465만원)를 무이자로 대출하는 내용이다. 이민자 수용에 가장 적극적인 독일에서도 극우 포퓰리즘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AfD)이 2017년 총선에서 백인 여성 임산부 사진을 배경으로 ‘새로운 독일인? 우리 스스로 만듭시다’는 문구를 내걸고, 13.5% 득표율을 달성하면서 제3당 자리에 올라서기도 했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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