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통신장비업체인 중국 화웨이를 옭아매려는 미국의 봉쇄전략에 제동이 걸렸다. 화웨이의 유럽 대륙 진출 관문인 동유럽 국가들이 중국의 투자공세에 흔들리면서 줄곧 안보 우려를 제기하는 미국의 압력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11일 주요 외신에 따르면 체코는 대통령이 앞장서 화웨이를 노골적으로 편들고 있다. 밀로시 제만 대통령은 “미국이 화웨이 제재를 요구하는 건 반중 감정과 인종차별주의를 조장하려는 히스테리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확고하다. 중국은 2012년부터 매년 총리가 중ㆍ동부 유럽국가 연쇄 순방에 나서는데 2016년에는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체코 수도 프라하에서 사흘간 머물며 제만 대통령과 고성(古城)에서 필스너 맥주를 마시는 파격행보를 보였다.
덕분에 중국 자금이 밀려들어 체코는 재정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심지어 제만 대통령이 큰 애착을 보인 체코 프로축구 구단도 파산위기를 모면했다. 반면 안드레이 바비스 총리와 체코 정보당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화웨이 제품이 국가안보에 심각한 해악을 끼친다고 주장한다.
지난달 화웨이 직원을 간첩혐의로 체포한 폴란드는 미국과 보조를 맞춰 화웨이 장비 사용을 줄이고 있다. 하지만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는 상황이다. 중국의 보복이 두렵기 때문이다. 지난달 폴란드주재 미국 대사가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를 찾아가 화웨이가 구축하려는 5G 네트워크를 저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반응은 미지근하다. 폴란드 정부 관계자는 WSJ에 “우리는 중국과 미국 사이에 끼인 꼴”이라며 “안보라는 명분 때문에 미국을 두둔한 것이 후회된다”고 말했다. 인근 슬로바키아도 “화웨이는 안보 위협이 안 된다”고 선언했고, 헝가리는 아예 화웨이의 지원으로 소방구급 네트워크를 완비한 터라 미국은 한숨만 내쉬는 형편이다.
동유럽은 서유럽에 비하면 경제규모가 훨씬 작지만 유럽 국가들이 5G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이 분야 선두주자인 화웨이와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화웨이가 동유럽에 교두보를 확보한다면 유럽 본토 또한 무방비로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ㆍ육상 및 해상 실크로드)를 마주할 수밖에 없다. 미국으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이번 주 부랴부랴 체코를 찾는 것도 그 때문이다. 화웨이는 2017년 유럽 통신장비 시장의 31%를 장악해 이미 에릭슨(29%)과 노키아(21%)를 제쳤다.
김광수 기자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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