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 한국 경제 늪이 되다] <1> 터질 것이 터졌다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 과정서 실직자들이 선택한 유일한 대안
먹자골목 150m내 고깃집만 32곳 “손님 한 명 없는 곳 수두룩”
수도권의 한 먹자골목 식당 폐업 장소에 이달 말 또 다른 음식점 개업을 앞두고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가림막 위쪽 벽면에는 옛날 가게 간판 흔적이 남아 있다. 서재훈 기자

지난해 1월 서울 지하철 2호선 뚝섬역 근처에 카페를 개업한 곽태수(32ㆍ가명)씨는 불과 1년 만에 폐업을 고민 중이다. 카페 문을 열 때만 해도 나름 시장 조사를 통해 목이 좋은 곳에 자리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핫 플레이스’로 떠오른 성수동 카페거리가 있었고, 역 주변이라 유동인구도 많았다. 그런데 하루 평균 매출은 30만원 정도. 직원 월급과 임대료 등 고정비용을 치르고 나면 간신히 적자를 면할 정도다. 곽씨는 “더 오래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지금으로서는 버틴다는 게 답도 아닌 것 같다”고 털어놨다.

사람이 몰리는 곳인데도 장사가 안 되는 이유는 역 주변에 우후죽순 들어서는 카페들 때문이다. 작년 한 해 동안에만 근처에 15곳의 카페가 들어섰고, 특히 7월에는 한 달간 6곳이 새롭게 문을 열었다. 곽씨의 가게 인근은 속된 말로 ‘눈에 밟히는 게 카페’인 곳이 돼 버렸다.

신규 카페가 늘면서 매출은 눈에 띄게 줄었다. 손님 수는 정해져 있는데, 가게는 늘어나니 당연히 수요와 공급이 맞지 않는다. 곽씨는 “카페 한 곳이 새로 생기면 1주일 정도는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하루에 적게는 5만원, 많게는 10만원까지 매출이 쪼그라든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경쟁 카페 하나에 하루 매출의 3분의 1이 뭉텅이로 줄어든다는 얘기다.

커피 바리스타 교육을 받는데 들어간 비용 200만원과 가게 임대료 월 200만원, 5,000만원 가까이 들어간 인테리어와 로스팅 기계 비용 등을 생각하면 속이 쓰리지만 곽씨에게 선택지는 많지 않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들어왔거나 더 늦게 문을 연 곳 중에서도 이미 포기하고 나간 곳이 있다”며 “그만 두기로 마음 먹었지만 당장 ‘다음’을 준비한 게 없어 간신히 버텨나가는 곳도 부지기수”라고 한숨을 쉬었다.

2019년 자영업자들이 맞고 있는 혹독한 현실이다. 누군가 실패하고 나간 자리에 새로운 경쟁자가 들어와 실패를 반복하는 ‘을(乙)의 생존 전쟁’이 반복되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인건비 상승이 자영업 시장 붕괴의 방아쇠를 당긴 셈이지만, 이미 오래 전부터 누적된 구조적 문제들이 터질 수 밖에 없었다는 진단이 나온다.

일요일인 10일 저녁 서울 은평구 연신내 먹자골목을 찾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자영업자는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 건이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경제 전체의 혹독한 구조조정이 단행되면서 노동시장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 자영업이었지만 치열한 경쟁구조, 높은 임대료 때문에 줄줄이 실패했고, 기존 자영업의 수익성까지 악화하게 만들었다. 우리 기업과 금융 부문은 구조개혁에 성공해 글로벌 수준으로 올라섰지만, 그 과정에서 일터를 빼앗긴 생계형 자영업자들은 우리 사회의 취약계층으로 전락했다. 한번 이탈하면 재취업이 사실상 불가능한 노동시장 문제, 열악한 사회안전망 등 때문이다. 이재원 중기중앙회 경제정책본부장은 “자영업자들이 실패하면 다시 임금 근로자로 돌아갈 수 있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하는데 돌아갈 통로가 없는 점이 악순환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근본적인 자영업 구조를 해결하지 못하면 정부가 어떤 지원책을 내놔도 실효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김경진기자
◇“밀리면 끝” 생존 경쟁에 내몰린 자영업자들

통계청은 지난해 3분기 기준 전국의 자영업(소상공인 포함) 종사자가 569만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현재 국내 총인구가 5,100만명 정도로 추계된다는 걸 감안하면 10명 중 1명이 자영업자라는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노동력 통계’에 따르면 한국의 전체 취업자 중 자영업자 비율은 25.41%에 달한다.

지난해 8월 중소기업중앙회가 숙박업이나 음식점 등을 하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300명을 대상으로 긴급 실시한 설문 조사는 이들의 참담한 현실을 드러냈다. 자영업자 10명 중 7명은 ‘현재가 위기’라고 털어놨다. 특히 식당이나 주점을 하는 이들은 80.5%가 위기라고 답했다. 절반인 51.5%는 상반기 매출액이 매달 20% 이상 감소했다고 답했는데, 그 원인으로 4명 중 1명이 ‘경쟁 심화’를 꼽았다.

“자영업이라는 게 진입 장벽 자체가 없다 보니 너도 나도 가게를 열겠다고 나서고 있다. 비슷한 종류의 가게들끼리 손님 나눠먹기를 하면서 결국은 모두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삼겹살 가게를 하고 있는 김모(53ㆍ서울 동대문구) 사장의 말이다.

실제 한국일보가 ‘불목(불타는 목요일)’이었던 지난 7일 오후 7시쯤 찾은 서울 은평구 연신내 먹자골목에선 자영업자간 ‘그들만의 전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었다. 먹자골목 안엔 고깃집 간판이 첩첩 쌓여 있었다. 반경 150m 내로만 따져봐도 전체 120곳의 가게 중 32곳이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파는 식당이었다. 가게 4곳 중 1곳에서 비슷한 음식과 술을 팔고 있는 셈이다. 식당 한 곳은 16명 가량의 손님이 매장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지만, 십여 개 테이블을 두고도 손님 한 명 없이 파리만 날리는 곳도 많았다.

한 고깃집 사장은 “한 번 둘러봐라. 주변에 고기 파는 식당이 천지”라고 한숨부터 쉬었다. “아등바등해야 손님 한두 명 더 받을 수 있고 그래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 저녁 5시부터 새벽 4시까지 하루도 쉬지 않고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솔직히 힘에 부칠 때가 많다”고 하소연했다. 100만원을 들여 홍보전단을 만들어 뿌리기도 했고, 직접 식당 앞에서 밤새 ‘손님 유혹’도 해봤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는 “이렇게 한 번 밀리면 답이 없어진다. 어쩔 수 없이 수지에 안 맞게 가격을 낮추게 될 거고, 그러다 결국은 사라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 한국일보] 김문중기자
◇승자도 웃을 수 없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경쟁

문제는 생존을 건 치열한 전쟁에 결코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점이다. 겉으로 보기엔 누군가는 문을 닫고, 누군가는 계속 장사를 할 수 있는 극명한 차이를 보이지만 “살아 남았다는 건 그저 조금 더 버텼다는 것일 뿐”이라는 게 상당수 자영업자들의 얘기다. 서울 방배동에서 주스 판매점을 하는 정모(32)씨는 “2~3년 전부터 생과일 주스 가게가 유행을 하면서 골목마다 2,3개씩 생길 정도였지만 그 중에 살아 남은 건 3분의 1도 채 안 된다”면서 “다행히 살아 남긴 했지만 나도 가게 임대료 내기가 버겁다”고 했다. 결국 그는 여름에는 주스를 팔고 겨울이면 가게 앞에서 붕어빵을 만들어 파는 ‘부업’을 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황모씨도 비슷한 경우다. 2010년 처음 문을 열었을 때만 해도 하루 200만원 정도 매출을 올릴 정도로 형편이 좋았다. 근처에 손님을 나눠먹을 경쟁 편의점이 없었던 덕이 무엇보다 컸다. 아르바이트생 3명을 쓰면서 100만원 조금 넘는 월 임대료를 냈지만 실수익은 쏠쏠했다.

하지만 주변에 총 3곳의 편의점이 생기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황씨는 “매출이 곧바로 반 토막 이상 나기 시작하더니 인건비와 임대료 등을 주고 나면 집에 가져가는 돈이 한 푼도 안 남게 되더라”고 털어놨다.

다행히 지금은 새로 생겼던 3곳의 경쟁 편의점이 모두 문을 닫으면서 숨통이 트였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은 ‘승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늘어나는 아르바이트생 인건비, 계속 줄어드는 매출 때문에 여전히 밤잠을 설치고 있다. 그는 “언제 어느 곳에 또 다른 경쟁 편의점이 들어설 지 장담할 수가 없다”면서 “다시 경쟁이 붙는다면 이번에도 살아 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일요일인 10일 저녁을 즐기기 위해 서울 은평구 연신내 먹자골목을 찾은 시민들이 각양각색의 표정으로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서재훈 기자 spring@hankookilbo.com

자영업자들은 ‘벼랑 끝까지 몰려 있다’는 말을 반복한다.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감당할 수 없는 ‘악재’가 하나라도 터진다면 한꺼번에 벼랑 아래로 굴러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호소한다. 서울 성북구 안암동에서 치킨집을 하는 김모(58)씨는 “장사하는 입장에서 보면 ‘앞으로 더 나아지겠지’하는 희망보다는 ‘이러다가 다 죽겠구나’ 싶은 걱정거리만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서 꼼장어집을 운영하고 있는 사장 한모씨는 “5년 이상 버티면 그나마 단골이라는 게 생긴다고 하는데, 채 2년을 버티기 힘든 게 현실이다. 장사 말고 할 수 있는 게 있다면 당장이라도 때려치우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1990대 후반 직장을 그만둔 그는 당구장, 고깃집, 닭한마리집에 이어 이번이 4번째 도전이라고 했다.

남상욱 기자 thoth@hankookilbo.com

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곽주현 기자 zoo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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