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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지난한 사법개혁

입력
2019.02.11 04:4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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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일 법원이 2017년 대선 당시 ‘드루킹’ 등과 공모해 포털 사이트 댓글 순위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지사에게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하자, 일부 정치인들이 담당 판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특수관계인으로서 정실에 의해 부당한 재판을 했다고 비난했다. 여당이 판결 선고 직후 ‘사법농단 세력 및 적폐청산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기로 하고 사법농단 관여 판사들의 탄핵 등을 거론한 것은 그런 시각의 한 단면이다.

그러나 대한변협의 지적처럼, 독립된 재판권을 가진 법관의 과거 근무 경력을 들어 재판 결과를 비판하는 것은 자칫 법관을 정쟁의 수단으로 삼아 사법부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판결에서 불리한 결과를 받은 당사자가 재판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거나 억울함을 호소할 순 있지만, 그 비판이 법관 개인을 향하는 것은 삼가야 한다. 이는 사건 당사자가 정치적 인물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같은 취지에서 일부 야당이 이 재판을 마치 사법부 독립의 상징처럼 쓰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 법조인들이 평하듯이 이번 유죄 판결은 드루킹 사건과 관련해 나올 수 있는 결과 중 하나였고 한 재판부의 판단일 뿐이다.

김 지사에 대한 1심 선고 직후 여야의 대응 모습을 보면, 사법개혁에 관한 정치권의 시각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또 과거 사법개혁 입법안들이 국회에서 좌초된 이유도 짐작할 수 있다. 선고 당시 정치권의 기민한 움직임들은 사법부의 독립과 개혁이란 주제마저 당장의 유ㆍ불리를 따지는 협소한 정치적 시각 안에서 다뤄질 따름이고, 사법제도의 민주적 개혁, 근로자ㆍ사회보장수급권자와 같은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 보호 등 그 동안 내세운 목표들은 구두선에 불과할 수 있다는 점을 드러낸다. 특히 그 논쟁에서 재야 법조인 출신 국회의원들마저 특정 법관을 비난하는 데 주력하고 사법개혁을 위한 문제의식으로 연결하지 못한 점은 못내 아쉽다. 누구보다 우리나라 사법 현실, 거기서 국민들과 소수자가 겪는 어려움 등을 잘 알고 있음에도, 그 경험과 지식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채 기성 정치의 관점을 쫓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이다.

작년 12월 대법원은 법원행정처를 폐지하고 사법행정회의와 법원사무처를 신설하는 내용의 개혁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요지는 법원행정처가 독점하던 중요 사법행정사무의 의사 결정과 행정 기능을 분산하는 것이고, 심의ㆍ의사 결정 기구로서 비(非) 법관이 포함된 사법행정회의의 신설, 상근 법관이 없는 법원사무처 설치 등이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됐다. 그런데 이 개혁안이 국회에서 차분하고 심도 있는 논의를 거치게 될지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김 지사의 1심 판결 선고 이후 여당은 대대적인 사법개혁을 벼르는 반면, 야당은 이를 삼권분립에 대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반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사법개혁이란 주제가 정쟁의 대상으로 소비되고 어떤 결과물도 내지 못할 수 있다. 이는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국회는 사법권의 독립성을 존중한다는 전제 아래 법원 개혁안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삼권분립 제도를 택한 국가의 입법부가 맡은 임무이고 그 권한의 한계다.

물론 그 논의 과정에서 국회 역할은 중요하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보통선거를 통해 선발된 국회의원들의 선택은 가장 큰 민주적 정당성에 기반하기 때문이다. 사법 개혁안과 관련하여 국회는 소수자의 재판청구권 등 일반 국민의 권리 보호에 충실한지를 검토하고 새 방안을 제안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그 권한의 적정한 행사를 위해 국회 스스로도 더 많은 법관이 더 좋은 재판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여러 사례를 살펴야 할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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