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 열리는 정기 주주총회 시즌이 다가오면서 올해도 금융지주사들의 ‘배당 고민’이 다시 깊어지고 있다. 이맘때면 항상 배당율을 두고 말이 나오기 때문이다. 당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주주에 성의를 보여야 하는 입장인 금융지주사들은 특히 최근 들어 사뭇 달라진 당국의 배당 관련 입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매년 커지는 배당성향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금융지주사들은 그간 배당성향(당기순이익 중 배당금 지출 비율)을 차츰 높이며 최근엔 20%대까지 끌어 올렸다. 금융감독원 집계에 따르면 KB금융지주의 배당성향은 2012년 13.4%에서 2017년 23.2%로 9.8%포인트 올랐다. 같은 기간 신한금융지주는 5.57%포인트(18.00%→23.57%), 하나금융지주는 16.14%포인트(6.39%→22.53%), 우리금융지주(우리은행)는 13.99%포인트(12.72%→26.71%) 상승했다. 최근 지난해 실적을 발표한 하나금융과 KB금융은 배당성향을 각각 25.5%, 24.8%까지 더 높였다.
하지만 이는 과거 이들이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며 배당을 최소화했던 것과 대비된다. ‘경제의 혈맥’으로 불리는 은행업의 특성상, 금융당국은 우선적으로 자기자본비율(BIS)을 충족시키거나 만일에 대비한 대손충당금을 최대한 많이 쌓아 놓게 하는 등 건전성 유지 명분을 앞세워 배당 자제를 권고해왔다.
또 KB 신한 하나 등 대부분 금융지주사의 외국인 주주 비율이 70% 안팎으로 높아, ‘국부 유출’ 비난 여론에 더욱 신경을 곤두세웠다. 2013년 SC제일은행의 배당 계획에 금감원이 제동을 건 게 대표적인 예다. SC제일은행은 당시 한국 진출 후 최대 규모인 2,000억원 배당(전년 하반기 중간배당 1,000억원 포함 시 총 3,000억원)을 계획했다가 대폭 축소했다. 그 때만 해도 은행 경영지도 방침을 ‘배당억제, 내실위주 성장’으로 정했던 당국은 SC제일은행의 고배당을 그대로 두면 이런 방침이 연초부터 크게 흔들릴 수 있고, 국내 고객에게 얻은 수익이 영국 본사로 대거 흘러 들어갈 것을 우려해 제지한 것이다.
◇’자제→확대’ 오락가락 당국 입장
그렇다고 정부나 금융당국이 늘 배당 억제만을 외쳐온 건 아니다. 글로벌 은행에 비해 국내 은행의 배당이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에 금융사들이 차츰 배당성향을 늘리기 시작하자, 당국도 “배당은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암묵적으로 이를 용인하기도 했다.
아예 배당 확대 정책을 밀어부친 적도 있다. 정부는 2015년부터 3년간 한시적으로 ‘기업소득환류세제’를 시행했다. 이는 수익 가운데 일정 수준 이상을 투자ㆍ배당ㆍ임금인상 등에 쓰지 않으면 기업이 추가 법인세를 내도록 한 제도로, 가계소득과 소비를 늘려 내수를 활성화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됐다. 임금 수준이 높은데다 일반 제조업체와 달리 투자 확대가 쉽지 않았던 금융지주사는 2016년 초 배당성향을 전년 보다 일제히 높였다. 당기순이익이 전년 보다 증가한 KB금융(21.5%→22.3%)과 신한금융(26.06%→26.66%)은 물론, 전년보다 이익이 줄어든 하나금융(18.55%→21.15%)과 우리은행(27.7%→31.8%)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이 제도는 배당만 크게 늘고, 임금이나 투자 증가 효과는 미미해 연장되지 않고 결국 폐지됐다.
한 금융지주사 관계자는 “언제는 배당률이 너무 낮으니 확대하자고 했다가, 자본유출 문제가 불거지면 다시 줄이라고 하는 등 수시로 방침이 바뀌니 어느 장단에 맞춰야 할지 곤혹스럽다”고 말했다.
◇당분간은 배당 확대 지속될 듯
최근엔 기업이 이익을 내면 일차적으로 주주에 배분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인식이 일반화되면서 당국도 배당 확대에 한층 너그러워지는 분위기다. 더욱이 ‘스튜어드십코드’가 강조되고, 행동주의 펀드가 속속 등장하는 등 주주권리를 적극 옹호하는 추세도 배당 자제를 요구하기엔 부담 요인이다. 당국 관계자는 실제 “건전성이 문제되는 시기면 몰라도, 요즘은 특별한 배당 관련 방침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내 금융사들이 배당성향을 높였다 해도 아직 글로벌 금융사들과의 격차는 크다. 유럽 금융사의 배당성향은 평균 60% 수준에 달한다. 이시연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점차 주주 친화적으로 변화되는 분위기에 은행도 예외일 수는 없을 것”이라며 “건전성 강화ㆍ규제 차원에서 배당을 제한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현재 국내 은행의 배당성향은 건전성을 우려할 정도까지는 아니다”라고 평가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보통신(IT) 바이오 등 고속성장 산업과 달리 금융업은 성장기회가 많지 않아 안정적인 배당 이익을 중시하는 주주들이 많다”며 “배당성향이 지금보다 더 높아지면, 매년 꾸준히 수익을 내면서도 저평가돼 있는 금융사와 은행주의 가치도 더 올라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민식 기자 bemyself@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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