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윤한덕 센터장 “응급구조사 업무범위 넓혀야”… 의사ㆍ간호사 등 이해관계가 걸림돌
“심근경색 환자 입장에서 생각해 봅시다. 치료시간을 단축하려면 가슴통증을 호소하는 환자는 119구급대원이 12유도 심전도 검사를 하고, 이를 의사에게 전송해 확인한 후 시술이 필요하면 심혈관센터로 이송하면 됩니다. 하지만 응급구조사의 업무범위는 12유도 심전도 검사를 허용하지 않습니다. 응급실에 실려온 환자의 심전도 전극도 응급구조사가 붙이지만, 실행버튼은 의사가 와서 누르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어요.”
국내 응급의료 발전에 헌신하다 지난 4일 설 연휴 근무 중 과로사한 윤한덕 국립중앙의료원 중앙응급의료센터장이 지난해 11월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꾸준히 제기한 응급의료 현장의 모순이다. 응급환자를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선 환자 이송을 담당하는 응급구조사가 기본적인 검사를 할 수 있도록 업무 범위를 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는 ‘응급의료에관한법률 시행규칙’에서 △심폐소생술 시행을 위한 기도 유지 △정맥로 확보 △인공호흡기로 호흡 유지 △포도당ㆍ수액 약물 투여 등 14가지로 규정하고 있다. 법률이 정한 업무 외의 행위는 모두 불법이다. 가령 응급구조사가 급성심근경색 환자 이송 중 12유도 심전도 검사 필요성이 있어 의사의 지시 아래 진료보조 업무를 했어도 이는 모두 불법 의료 활동에 해당한다.
하지만 법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응급실에서 근무하는 의료 인력 부족으로 수련의(인턴) 업무 중 상당수가 응급구조사에게 넘겨지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의 한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15년차 응급구조사 A씨는 “남성 환자의 비뇨기에 관을 넣어 소변을 배출 시키는 도뇨관 삽입, 식도나 위에 출혈이 있는지 감별하기 위한 위장관 튜브 삽입 등의 업무는 의사 지시 아래 일상적으로 하고 있다”며 “수련의가 이 모든 업무를 다 하려면 환자 1명당 30~40분의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데 수련의도 응급의학과 업무만 맡고 있는 게 아니어서 일손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는 복지부가 시행규칙만 개정하면 조정할 수 있지만, 의료인 직역간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문제 해결이 간단치 않다. 기존 의사ㆍ간호사ㆍ임상병리사 등의 업무와 충돌하는 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심전도 검사나 채혈 등은 병원 내 임상병리사의 업무다. 이 때문에 윤 센터장은 생전에 보건의료 단체들을 향해 “응급구조사가 침해하는 업무는 극히 일부일 뿐이니, 조금만 양보해 주시기 바란다”며 호소하기도 했다.
소방청과 복지부는 응급구조사 중 1급 자격을 보유한 119구급대원이 할 수 있는 응급처치에 △12유도 심전도 측정 △탯줄 절단 등을 포함한 ‘구급대원 업무 범위 조정ㆍ검증 시범사업’을 다음달부터 실시한다. 119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오는 도중에는 구급대원이 12유도 심전도 측정을 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병원 내 응급구조사는 여전히 불가능하다. 유인술 충남대 응급의학과 교수는 “응급구조사 면허증은 같은데, 일하는 직장이 소방청이냐 민간병원이냐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이 정해지는 건 불합리하다”며 “응급의료법을 개정해 응급구조사의 업무 범위를 현실화하되, 일정 기간마다 업무 수행 능력을 조사해 범위 조정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는 응급구조사 업무에 대한 교육ㆍ평가ㆍ질 관리 위원회를 구성하고 5년마다 업무 범위를 조정하는 ‘응급의료법 개정안’(윤소하 의원)이 발의돼 있다. 해당 법안에 대한 공청회가 오는 13일 열리는데, 윤 센터장도 토론자 중 1명으로 참가할 예정이었다.
김지현 기자 hyun1620@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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