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술루군도 연쇄 폭탄테러, 자치 확대 앞두고 새로운 갈등
지난달 27일 필리핀 남부 민다나오 지역 술루군도 홀로 섬에 위치한 가톨릭 대성당은 오전 미사 중 벌어진 연쇄 폭탄 테러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로 인해 사망자 23명, 부상자 100여명이 각각 발생했다. 필리핀 남부에서 세 자리 수의 사상자가 나온 건 15년 만에 처음이다(2004년 2월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조직인 아부사야프그룹이 ‘MV 슈퍼페리’를 폭파해 116명이 숨지고 900명이 다치는 대참사가 발생한 적이 있다). 물론, 홀로 섬 대성당이 테러의 타깃이 된 건 처음이 아니다. 2000년 이후에만 10차례 이상 공격을 당했다. 그럼에도 이번 테러는 사상자 규모와 공격 시기, 방식 등을 볼 때 여러모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우선, 공격 시점을 보자. 지난달 21일 민다나오 지역은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역 (ARMM)’에서 ‘방사모로 무슬림 민다나오 자치구역(BARMM)’으로 자치 수준을 한층 강화하는 ‘방사모로기본법(BOL)’을 두고 1차 주민 찬반투표를 실시했다. 같은 달 25일, 88% 이상의 압도적 찬성이 나온 결과가 발표되면서 이 법안은 사실상 승인됐다. 그런데, 불과 이틀 만에 홀로 섬 성당 공격이 발생했다. 홀로 섬이 있는 술루군도는 해당 주민투표에서 반대표가 우세했던 곳이다. 민다나오 지역 안에서도 분리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의미다. 술루군도 주지사조차 주민투표 결과와 무관하게 BARMM으로 편입되기 쉬운 선거구를 놓고 투표 이전부터 강하게 반발해 왔다. 술루 지방의 정치 성향도 그렇거니와, 이번 공격 후 드러나는 사실과 정황은 50년 분쟁 종식을 위한 각고의 노력 끝에 새로운 자치 실험을 눈앞에 둔 민다나오 지역이 새로운 갈등 요소로 점철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공격 방식은 특히 주목할 대목이다. 테러 5일 후인 2월 1일, 술루 경찰은 ‘대성당 공격(1차 폭탄테러)은 자살 공격’라고 발표해 국내외 옵저버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세계 최장기 분쟁 지역 중 하나인 필리핀 남부는 온갖 형태의 공격과 테러가 있었지만 자살 공격의 전례는 매우 드물다. 기록으로 보자면 2002년 10월 4일 삼보앙가시(市)에 주둔 중이던 미국 특수부대원 한 명과 민간인 두 명의 목숨을 앗아간 오토바이 폭탄 테러가 자살공격으로 추정된다. 당시만 해도 이 사건은 ‘알카에다 연계’로 수식되던 아부사야프그룹이 배후로 지목됐었다. 두 번째는 지난해 7월 31일 바실란 지방 라미탄에서 10명의 목숨을 앗아간 차량 폭탄이다.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이슬람국가(IS)는 즉각 선전매체인 아마크통신을 통해 “폭탄 테러범은 모로코계 독일인 아부 카티르 알 마그리비”라면서 자신들의 소행임을 밝혔다. 이 공격 역시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BOL에 서명한 지 1주 만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BOL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조심스럽게 제기된 바 있다. 그리고 이번 술루군도 성당 테러가 세 번째 자살 공격으로 추정되고 있다.
당국은 일단 ‘외국 테러리스트’의 소행 가능성을 열어놨다. 에두아르도 아뇨 내무장관은 인도네시아 남녀 두 명을 자살 공격범으로 지목한 뒤, 이들 ‘외국 테러리스트’를 테러 장소로 안내한 건 아부사야프그룹과 연계된 “아장아장그룹의 ‘카마’”라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필리핀 국방부와 정보 당국도 “민다나오 지역에 최소 44명의 외국 테러리스트들이 숨어 있다”고 밝혀 왔다. 이제 곧 3년간의 ‘방사모로 과도정부(BTA)’가 출범하는 민다나오 지역에 ‘IS 동아시아 지부’를 자처하는 다국적 지하디스트(성전주의자)들이 예상보다도 훨씬 더 깊숙이 침투해 있다는 의미다.
‘사령관을 잃다’라는 뜻을 가진 아장아장그룹은 이번 공격을 계기로 등장한 생소한 이름이다. 이와 관련, 알자지라는 지난 3일 단독 보도에서 이들에 대한 실마리를 제공했다. 보도에 따르면 아장아장그룹은 아부사야프그룹에서 활동하다 사망한 대원들의 2세가 모여 2009년 결성한 조직으로, 원래 이름은 ‘럭키 9’이었다. 기사에 거론된 아장아장그룹 대원은 “기독교도를 죽이는 게 목표”라면서 “그들이 술루에 거주하는 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특정 종교를 향한 이 같은 적개심은 또한 이번 술루 공격이 남긴 간과할 수 없는 물음 중 하나다. 게다가 대성당 공격 사흘 후인 지난달 30일엔 삼보앙가에 위치한 카마르디칸 모스크가 수류탄 공격을 받아 두 명이 숨졌다. 보복성 공격으로 풀이됐다.
그동안 민다나오 분쟁은 마닐라 정부의 구조적 차별과 소외에 반발하며 남부 커뮤니티가 봉기한 성격이 강했다. 종교는 남부 커뮤니티 다수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요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민다나오 분쟁 자체를 ‘종교 분쟁(religious conflict, 종교 간 다툼)’ 또는 ‘종파 분쟁(sectarian conflict, 한 종교 내의 종파 간 다툼)’으로 볼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이번 대성당 공격, 그리고 곧바로 이어진 모스크 공격은 남부 폭력이 종교 또는 종파 간 갈등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마지막으로, 테러 조직과 활동이 대물림되는 현상은 민다나오 평화 프로세스에 매우 위중해 보인다. 근본적 시술과 전략적 대응을 요하는 대목으로, 자치의 내용과 지역을 확장시키는 것과는 별도로 다뤄져야 할 문제다. 그렇지 않아도 술루군도는 아부사야프그룹을 중심으로 납치와 테러가 멈추지 않는, 이른바 ‘해양 테러리즘’의 전초 기지다. 여기에다 ‘IS 세력의 확산’이라는 글로벌 정세까지 가미되면서 최근에는 해양 테러리즘과 IS 테러리즘이 결합하는 콜라보 현상도 새로 등장했다. 오스트리아의 ‘테러리즘 리서치 이니셔티브’ 연구소가 격월로 발행하는 ‘테러리즘 전망’은 지난 2014년 6월호 보고서에서 “인도네시아와 필리핀의 바다 국경은 동남아시아 지역의 테러리스트들이 한 구역에서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는 관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남아 극단주의 무장조직 대원들이 필리핀 훈련 캠프로 향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의 칼리만탄 티무르에서 말레이시아의 자바주(州)로, 그리고 다시 필리핀 최남단 타위타위 섬을 거쳐 술루군도로 항해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술루 공격은 ‘훈련’을 위해 바다 국경을 넘어 필리핀 남부로 들어오던 양상이, 이제 ‘공격’을 위한 여행으로 한층 업그레이드됐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복잡하게 전개되는 필리핀 남부 상황과 관련, 자카르타 소재 싱크탱크인 ‘분쟁정책분석 연구소(IPAC)’의 시드니 존슨 국장은 군사 작전을 통해 테러 연루 인물들을 전멸시키는 게 상책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동남아 안보 문제의 ‘대가’로 꼽히는 존슨 국장은 이번 술루 공격 직후, “아부사야프 가해자들을 ‘박멸’시키지 말아라. (그 대신) 그들로부터 정보를 취득해라”라는 제목의 긴급 분석문을 발표했다. 여기서 그는 “미 특수부대의 부추김까지 있다 보니 극단주의 세력을 박살내겠다고 은신처에 공습을 가하고 있는데, 이는 정말 치명적으로 중요한 정보를 잃고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대(對)테러 및 대반군 작전, 나아가 분쟁 해결 과정에 있어서 치밀한 정보 수집,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한 전략적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반란의 섬’ 민다나오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유경 국제분쟁전문 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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