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연설에서 맞붙은 패션 정치
정치인은 ‘패션’으로도 말한다는 격언이 확인된 행사였다. 역대 두 번째로 긴 82분 국정연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붉은 넥타이’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은 ‘흰옷’으로 그들이 지향하는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색 타이를 맸다. 특별할 것 없는 선택 같지만, 지난 의회 연설들과 비교하면 차이가 뚜렷하다. ‘푸른 넥타이’를 버린 것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취임 후 첫 의회 연설에서 “국민이 하나가 돼 분열의 위기를 극복하자”라고 호소하며 야당인 민주당의 상징색인 푸른색 넥타이를 맸다. 대통령 뒤에 나란히 앉은 공화당의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 라이언 하원의장까지 파란색 원색 넥타이로 통일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연두교서에서도 ‘단결’을 언급하며 밝은 파란색 넥타이를 맨 바 있다.
하지만 올해 국정연설 주제로 ‘초당적 화합’을 내세우면서도 이번에는 ‘붉은 타이’를 고집했다. 미국의 대중문화 전문 매체인 ‘치트 시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경 장벽 건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상을 트위터에 올릴 때마다 붉은 넥타이를 맸다고 분석했다
연단 아래에서는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여성 의원들의 ‘흰옷 물결’이 주목을 받았다. 20세기 초반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흰옷을 입었던 것에 유래한 것으로, 여성의 참정권 신장과 경제적 안정성을 의미한다. 각종 비하 발언과 스캔들로 논란을 일으켜 온 트럼프 대통령의 여성관에 항의하는 의도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와 부인 멜라니아는 어두운 색의 드레스를 입어 상반된 메시지를 전달했지만, 또 다른 딸 티파니는 이례적으로 ‘흰옷’을 입어 주목받았다. USA 투데이는 티파니를 두고 “미운 오리 새끼 아니냐”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전했다.
2018년에는 민주당 여성 의원 대부분이 미투(#MeToo) 운동을 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검은색 옷을 입고 참석했었는데, 당시 대통령 부인은 새하얀 슈트를 입고 등장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넥타이가 연설 내내 비뚤어져 있어 온라인에서 놀림거리가 됐다. 정치 풍자 프로그램 ‘더 데일리 쇼’의 호스트 트레버 노아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의사당에 입장하면서 600명을 지나쳤지만, 그 중 누구도 그에게 (넥타이가 휘었다는) 사실을 말해줄 용기가 없었다”면서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아마 ‘앞으로 넥타이는 저렇게 매야 해’라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비꼬았다
최나실 기자 verit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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