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유명한 소설, 연극으로 또 다른 재미 주려면… “연출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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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유명한 소설, 연극으로 또 다른 재미 주려면… “연출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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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7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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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프랑스 공쿠르상을 두 번 수상한 유일한 작가 로맹 가리의 '자기 앞의 생'을 원작으로 한 연극이 이달 명동예술극장에서 초연된다. 원작 소설이 파리 슬럼가의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줬다면 각색된 희곡은 모모와 로자의 관계에 좀 더 집중한다. 국립극단 제공

“소설로도 충분한데 굳이 왜 연극으로 만드냐고요. 소설가가 할 수 있는 이야기와 방식이 있고 연극이 할 수 있는 방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설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는 방식이었다면 공연하지 않았을 거예요.”

지난달 열린 남산예술센터의 2019년 시즌 프로그램 발표 기자간담회. 배요섭 연출가는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무대화 하는 연극 ‘휴먼 푸가’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소설이 아닌 다른 장르로 접하기 어려웠던 한강 작가의 작품이 무대 언어로 바뀌는 데는 ‘연극적인 방식으로’라는 조건이 붙었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의 상황과 그 이후 남겨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룬 원작 소설을 해체하고 재조립해 새로운 퍼포먼스극으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연극과 소설은 사건과 갈등으로 이뤄진 서사라는 공통점을 지녔다. 소설을 각색한 연극이 무대에 자주 오르는 이유다. 올해 주요 연극 무대에서도 유명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들이 잇달아 무대에 오른다. 국립극단은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 원작 ‘자기 앞의 생’을 국내에서 처음 선보인다. 두산아트센터는 이창동 원작 ‘녹천에는 똥이 많다’, 김윤영 원작 ‘철가방 추적작전’, 노르웨이 작가 게르드 브란텐베르그 원작 ‘이갈리아의 딸들’을 올해 시즌 프로그램으로 선정했다. 남산아트센터는 ‘휴먼 푸가’를 비롯, 지난해 초연 후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연극에 뽑힌 장강명 원작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을 재공연한다.

소설의 연극화는 보편적이지만 작업 과정이 쉽지는 않다. 서사라는 공통분모를 지녔다 해도 소설 속 이야기를 무대 위로 그대로 옮긴다고 좋은 작품이 되진 않는다. 무대의 제약을 줄이고, 소설을 희곡으로 재구조화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연극 창작진은 입을 모은다.

‘자기 앞의 생’도 숙고를 거쳐 탄생한 연극이다. 프랑스의 작가 겸 연출가인 자비에 제이야르가 희곡으로 각색한 버전으로 무대에 올린다. 프랑스 파리 슬럼가를 배경으로 자신의 부모가 누군지 모르는 아랍계 소년 모모와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을 키우는 유대인 보모 로자의 이야기라는 점은 원작과 같다. 소설이 모모와 로자 주변의 다양한 인간군상을 펼친 것과 달리 희곡은 두 사람의 관계에 더 집중한다. ‘자기 앞의 생’의 박혜선 연출가는 “소설 속에선 한 동네에 사는 청소부, 창녀, 성소수자, 친구들 등 남루한 삶의 이야기가 등장하지만 이 모든 인물들을 무대에서 표현하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희곡에서는 특정되는 몇 명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고 설명했다.

‘녹천에는 똥이 많다’는 시각적인 표현 방식에 역점을 뒀다. 동명 소설을 각색 중인 윤성호 극작가는 “소설에는 회상이 잦고, 주인공이 느끼는 내면 묘사가 많아서 내면의 말들을 어떻게 무대 위에서 연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이야기 배치 순서를 뒤집고 주인공들의 내면을 이미지로 표현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윤 극작가는 “낭독공연처럼 소설의 문장을 살리면 더 ‘연극적인 표현’이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고 말했다.

소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시간이 과거에서 한쪽 방향으로만 흐른다는 전제를 뒤집는다. 연극 역시 시간이나 사건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연극만으로 풀어낼 수 있는 표현으로 지난해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뽑은 올해의 연극에 선정됐다. 서울문화재단 제공

남산예술센터는 연극적 실험을 고민한다. 남산예술센터는 소설의 무대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내 심장을 쏴라’(원작 정유정), ‘당신이 알지 못하나이다’(원작 권여선) 등이 이미 공연됐다. 지난해 정진새 극작가가 각색하고 강량원 연출가가 연출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공연 준비에만 2년이 걸렸다. 우연 남산예술센터 극장장은 “연출에서도 소설의 무대 재현이 목적이 아니다”며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두 사람이 한 인물을 연기하는 등 소설과는 다르게 연극만이 보여줄 수 있는 연출을 보여준다”고 자평했다.

소설은 웹툰 등 다른 서사 장르에 비해 저작권료가 저렴한 편이다. 소설을 직접 각색하고자 할 때는 원작 소설의 판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에 2차 저작물 사용 허가를 요청한 뒤 저작권료를 협의한다. 공연 제작사는 예상 매출을 기반으로 통상 적용되는 로열티를 적용해 저작권료를 산출해 계약한다. 국내든 해외든 과정은 같다. 이미 각색 돼 있는 희곡을 무대에 올릴 때에도 원작 소설 판권을 가진 출판사까지 두 번 계약을 해야 한다. 한 공연계 관계자는 “원작자와 작품에 따라 저작권료가 다르지만 해외 소설과 비교해 국내 소설의 저작권료가 높은 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원작 소설의 매력 중 하나는 관객들에게 이미 잘 알려져 있다는 점이다. 공연 전문 포털사이트 스테이지톡이 관객 1,020명을 대상으로 올해 기대되는 공연을 조사한 결과, 연극 초연작 부문에서는 ‘이갈리아의 딸들’이 266표로 1위에 올랐다.

양진하 기자 realh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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