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재식 원자력안전위 위원장
“한빛 2호기 등 구조물 부식 이후 모든 원전 엄격하게 점검
원전은 안전이 최우선… 원안위에 경제ㆍ정치 논리 개입 안 돼”
모든 정책이 그렇지만, 원자력 만큼 과학적 지식과 판단이 더 요구되는 분야도 없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 사회에서 원자력 분야는 어느새 과장되고 부정확하며 편향된 정보가 넘치는 ‘이데올로기의 대결장’이 돼 버렸다. 원자력의 안전을 책임지는 원자력안전위원회는 그 대결의 장 한 가운데 서 있다. 현재 정원 9명인 원안위원 중 이런저런 이유로 네 자리가 공석인 상황에서, 원안위는 최근 신고리 4호기 운영 허가를 의결했다. 지난해 12월 전임자의 돌연 사퇴로 원안위 운영 책임을 맡은 엄재식(53) 위원장을 만났다. 일부에서는 엄 위원장의 대학 시절 전공이 사회복지라는 점을 들어 비전공자라고 지적하지만, 그는 행정고시 합격 후 원안위에서만 주요 보직을 쌓아온 원전 정책 전문가다.
_ 원전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워낙 격렬한 상황이어서 원안위의 신고리 4호기 운영 허가 결정이 늦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전체회의에 안건이 상정되자마자 허가를 의결해 다소 놀랐다.
“신고리 4호기는 2015년 허가를 받고 가동 중인 신고리 3호기와 동일하게 설계돼 비교적 신속하게 운영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2016년 9월 경주 지진과 2017년 11월 포항 지진 발생으로 안전성을 처음부터 다시 점검해야 했다. 설계 당시 최악의 지진으로 상정했던 지진은 리히터 규모 5.0이었던 1937년 지리산 지진이었다. 하지만 경주 지진은 리히터 규모 5.8, 포항 지진은 5.4로, 그보다 훨씬 강한 지진이었다. 그래서 안전성을 확인하는데 7년이 걸렸다. 원안위 전체회의에 안건이 상정되자마자 통과된 것은 원안위가 2017년 2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7회에 걸친 원자력안전전문위원회의 사전 검토결과 보고 기회를 가졌고, 현장 방문 등 사전 작업을 충분히 한 결과다. 7차례의 보고 과정에서 원안위원들이 다양한 질문을 제기하며 안전에 대한 의구심을 충분히 해소할 수 있었다. 모든 심의과정의 속기록을 공개하고 방청도 허용하는 등 심사과정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했다.”
_ 야당과 친(親) 원전론자들은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 때문에 원전가동률이 떨어졌고 그 때문에 미세먼지가 많아졌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2016년 6월 영광 한빛 2호기 철판 부식 발견 이후 고리 3ㆍ4호기, 한빛 3~6호기, 한울 2ㆍ5ㆍ6호기에서 철판부식 간극 등 부실공사 흔적이 잇따라 발견된 것이 가동률이 떨어진 원인이다. 위원장도 특히 한빛 4호기의 윤활유 유출은 심각하다고 했다. 원전 가동률이 80~90%로 세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원전 부실시공 가능성까지 나왔다.
“원자로 격납 구조물은 방사선 노출을 막는 최후 방호벽이다. 그 건물에서 구멍이 발견된 것은 공학적 안전성 여부를 떠나 원전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심각한 사태라 판단해 가동 중인 23기 원전 모두를 엄격하게 검사하고 있다. 콘크리트 공극은 20기의 점검을 완료했는데, 그중 14기에서 발견됐고, 특히 한빛 3ㆍ4기에서 집중적으로 나왔다. 해당 원전에 사용된 공법상의 결함으로 보인다. 현재 한빛 3ㆍ4호기 등 3기를 점검하고 있다. 격납건물 내부철판은 월성 등 내부철판이 없는 원전이 있어서 점검 대상이 19기이고, 13기에서 두께 미달이 발견됐다. 점검은 올해 안에 마무리될 것이다. 원자로 격납 건물 안전도 검사는 원전을 세워야만 할 수 있어, 15~18개월 주기로 가동을 멈추고 진행하는 정기검사에 맞춰 순차적으로 진행하는 데, 아무래도 정기검사보다 검사 기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2017년부터 원전 가동률이 떨어졌을 것이다. 원안위가 원전 가동률을 신경 쓴다면 안전점검이라는 본연의 임무가 소홀해질 수 밖에 없다. 원전 운영사에도 가동률을 경영 효율성이나 인사평가 지표로 사용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있다. 원전 가동률 하락을 탈원전 정책과 연계하는 건 위험한 발상이다.”
_ 아무리 설계상 100% 안전하다 해도, 공사나 운영 과정에서 실수나 부정부패 등이 개입하면 원전의 안전을 지키기 어렵다. 게다가 원전 안전에 꼭 필요한 유지 보수 인력 부족 현상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2013년에는 원전 사업자 사이에 부품 시험성적서 등 품질 서류를 위조해 부당 이익을 챙긴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준 적도 있다. 이처럼 안전 문제는 원안위가 미리 생각한 범위를 벗어나는 사건 사고가 종종 벌어진다. 그래서 원안위도 검사 방법이나 범위는 물론 안전 시스템도 끊임없이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원안위뿐 아니라 원전 사업자도 함께 해야 한다. 안전 점검을 위한 원안위 인력과 예산 보강도 필요하다. 원전 정기검사는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에 위탁하고 있다. 그래서 원자력안전 규제 관련 전문인력 규모를 산정할 때 원안위 자체 인력에 KINS 인력도 합친다. 그럼에도 원전 1기당 전문인력은 우리나라가 25명으로 캐나다 45명, 프랑스 38명, 영국 37명, 미국 34명 등 선진국보다 훨씬 적은게 현실이다. 정부가 원자력 산업 생태계를 강화하겠다고 여러 차례 밝혔는데, 원자력 유지 보수 인력을 늘리는 것도 그런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_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 시설이 2021년 포화 상태에 도달한다. 이 역시 원전 안전을 위협하는 요소인데, 저장시설 증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나.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 문제 등의 기본정책은 산업통상자원부가 결정할 일이다. 원안위는 정책의 큰 틀이 결정되면 사용후핵연료에 대한 안전관리를 어떻게 할지 구체적 기술기준을 정하는 일을 하게 된다. 건설 과정에서 안전성, 유지관리 과정 안전성, 들어가는 폐기물의 안전성 등을 따져보게 될 것이다. 문제는 월성 1~4호기의 사용후핵연료 보관시설은 당장 2년 후면 포화상태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현 정부는 100대 국정과제 중 하나로 고준위 방폐물 관리 계획의 재검토를 제시했다. 이에 따라 산업부는 지난해 5월부터 6개월간 고준위 관리정책 재검토준비단을 운영했으며, 조만간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월성원전 내 임시저장시설 증설 문제를 다룰 예정이다. 월성원전에는 사용후핵연료를 임시 저장하는 ‘캐니스터’(원통형 콘크리트 사일로)와 ‘맥스터’(창고식)가 있다. 천연우라늄을 쓰는 중수로 월성원전 1~4호기는 사용후핵연료 배출량이 많아 열과 방사능 수치를 낮추기 위해 수조에 6년 간 보관한 뒤 옮긴다. 월성원전 ‘캐니스터’는 2010년 4월 모두 찼다. ‘맥스터’는 캐니스터보다 더 많은 양을 보관할 수 있지만 이곳 7개 맥스터의 90.3%가 차 있는 상황이다. 원안위는 현재 맥스터 추가 건설에 대해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원안위의 질문에 대해 아직 사업자의 답변이 없어 진행이 안되고 있는 상황이다.”
_ 현재 원안위원 중에 원자력 전공자가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원안위법이 규정한 위원 자격요건을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원자력 이용자나 원자력이용단체에 3년 이내에 근무했거나, 용역개발 과제를 받은 적이 없는 사람’이란 요건은 이해 상충을 막기 위한 것이겠지만, 원자력 산업계가 협소한 국내 상황에서 원자력공학 학계 전문가가 이 조항을 벗어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전임 위원장의 중도 사임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수력원자력처럼 발전용 원자로 운영회사라든지, 아니면 한국원자력연구원 같은 방사선 핵심기술 기관으로부터 직접 연구용역을 받았다면 분명 이해 상충의 여지가 있다. 설사 그런 인물이 위원이 되더라도 대부분 안건에서 제척기피 대상이 돼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다만 현재 결격사유 조항은 금지 대상을 ‘원자력이용자, 원자력이용자단체’로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 문제다. 원자력 관련 국가연구개발사업 추진사업의 대부분은 원자력연구원이 주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연구에 공동으로 참여한 전공자까지 결격으로 보는 것은 과도해서 금지 대상을 구체화하려는 개정 법안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원안위원의 전문성 확보를 위해 국회가 해당 법안을 조속히 통과해 주기를 기대한다. 덧붙이자면, 원안위원이 모두 원자력 전공자로 충원되는 것도 문제가 된다. 원안위 심의 과정에서 전문 기술적 검토는 원안위 전문위와 원안위 산하기관인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이 맡고 최종 판단을 원안위원회가 한다. 이 과정에서 비전공자 출신 원안위 위원은 다양한 전문가그룹의 설명을 들으며 전문성을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 원자력 전문가들만으로 충원된다면 문제를 다양한 시각에서 검토하지 못할 우려가 크다. 그런 점에서 원자력 전문가뿐 아니라 법, 환경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가 참여하는 게 바람직하다.”
_ 일본 의회가 작성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 조사 보고서는 사고 당시 일본 원안위 고위관계자가 비상관제센터에 합류했지만, 전문성 부족으로 적절한 조언을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한국원자력학회가 지난 2012년 만든 보고서 역시 전문성이 부족한 관료조직인 일본 원안위가 사고에 대한 기술적 판단을 하지 못한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국 원안위는 긴박한 순간에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을까.
“만일 후쿠시마 사고 같은 일이 벌어졌을 때, 원안위가 판단해야 할 문제는 단순히 사고원인이 무엇인지 찾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물론 사고 원인과 기술적 대응책을 정확하고 신속하게 파악하는 전문성도 중요하다. 그렇지만 사고가 벌어졌다면 인근 주민 보호가 더 중요하다. 어느 정도의 원전 반경 이내 주민을 어떻게 대피시키느냐 등에 대해 정책 결정자가 정확히 판단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하고, 그 조치가 신속하고 순조롭게 이뤄지도록 대비해야 한다. 원안위에는 여러 분야의 전문 경험이 복합적으로 필요하다.”
_ 우리나라에서 원안위 결정에 대해 논란이 많은 근본적 이유는 원안위 의사결정의 독립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우선 지난 정부가 대통령 직속기구였던 원안위를 원자력진흥위원장인 국무총리 산하로 둔 것부터가 잘못된 결정이다. 또 원안위원 9명 중 5명을 대통령이 추천ㆍ임명하고, 또 여당이 2명을 추천하는 것도 정치적 중립성 측면에서 부적절해 보인다.
“원안위 뿐만 아니라 모든 규제기관은 독립성이 신뢰의 근간이다. 원안위를 다시 대통령 직속으로 옮기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제도보다 국민으로부터 ‘원안위는 객관적 팩트에 기반해 안전을 제대로 챙기고 있구나’라는 신뢰를 받아야 독립성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원안위원 중 7명을 비상임직으로 두는 것은 바뀌어야 한다. 역할의 중요성이나 업무량을 생각할 때 본업과 원안위원을 병행하는 것은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다. 국회 추천 4명은 다양한 시각을 반영한다는 측면에서 그대로 유지하더라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5명은 상임직으로 해야 원안위의 전문성은 물론 독립성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_ 국민들이 원안위에 묻고싶은 단 하나의 질문을 꼽으라면 이것 아닐까 싶다. 정말 원자력은 안전한가.
“원자력 기술을 이용하는 모든 나라에 원자력안전 규제 감독기관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원자력이 안전하고 완전무결하지 않다는 간접 증거가 되지 않을까. 원자력은 다른 모든 기술처럼 항상 사고 가능성이 있다. 그걸 막으려고 원전을 건설할 때 안전장치를 겹겹이 갖추고, 그걸 감독하고 보수하는 노력도 지속해야 한다. 특히 방사선은 유출되면 현재의 과학 수준에서는 이를 원상복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원자력 사용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은 안전이다. 조금의 위험 가능성이 있더라도 원전을 세우고 위험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 원전을 경제 논리로 생각한다면 이런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그런 점에서 원안위의 정치적 중립성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원안위가 특정한 입장을 갖는 순간 모든 결정의 공정성이 의심을 받게 될 것이다. 원안위의 결정을 특정 프레임으로 해석하고 비판하고 그로 인해 원안위 결정이 흔들리는 걸 볼 때마다 너무 안타깝다. 물론 원안위도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 방법은 의사결정의 투명성을 강화하고 이해 관계자들과의 대화와 소통을 강화하는 것뿐이다. 지역주민 원전 관련 사업자 등 모든 이들과 더 자주 만날 것이다.”
인터뷰=정영오 논설위원 young5@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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