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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내 이야기가 많은 사람

입력
2019.02.07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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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손님이 왔다. 지인이 한국사람 집에 가보고 싶다는 일본 여인을 데리고 왔다. 용건 없는 만남이지만, 우리의 대화가 어디로 퍼져갈지 궁금했다. 현관에 들어오자마자, 제일 먼저 나타나는 고비를 바라본다. 이미 온 적 있는 지인이 “부모님이 물려주신 거랍니다” 라고 소개를 한다. 그 말 한마디가 물건의 가치처럼 들린다. 복도 벽에 걸어놓은 흑백의 가족사진 앞에는 누구든지 머무는데, 내가 매일 바라보는 보통 물건이 특별해지는 순간이다. 이번에는 내가 소개를 했다. “원하는 건 결국 이루어 지더라고요” 라고 덧붙인 말이 내게 하는 말 같았다.

오래전부터 그런 사진을 갖고 싶어 했더니, 사진 작가를 만나게 되고, ‘가족’을 주제로 전시를 한다는 그가 우리 가족을 찍는 날도 왔다. 아빠 양복을 입은 아들의 빡빡머리 사진은 군대에서 휴가 나온 날을 말해준다. 교복만 입는 중학생 딸을 엄마 옷으로 포장했어도, 풋풋하고 싱그러운 소녀의 표정은 가릴 수가 없다. 새 식구가 된 며느리를 빠뜨릴 수가 없었는데, 새로운 인연의 사진 작가를 만났고, 우리는 또 찍었다. 벽에 가득한 사진들은 내 마음 속 씨앗이 이루어낸 결과다. 그러니 생각하면 생각한 대로 된다고 할 밖에. 십수 년이 걸리더라도.

소파와 테이블 같은 서양 가구와 물려받은 한국 가구가 뒤섞인 거실에서 그들은 다시 감탄한다. “집을 한국가구로 꾸미고 싶지만, 다 갖출 수가 없다”는 일본여인에게 나는 “서양 가구와 한국가구가 함께 있는 집이 더 멋지다”는 나의 지론을 펼치면서, “일본 가구 1점과 한국가구 1점과 실용적인 서양 가구가 함께 있는 집은 더 근사할 거다” 라고 했다. 그들은 우리 집 물건 하나하나에 관심을 보였고, 나는 그것들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남편의 이모가 쓰던 낡은 베개가 눈길을 끄나 보다. 아들을 바라고 ‘다남’이란 한자를 수놓은 딱딱하고 네모난 베개는 쓸모와 의미는 사라졌어도 훌륭한 장식이다. 빈집이 되어버린 남편의 시골 외갓집에서 들고 온 미제 제니스 라디오는 멋진 빈티지 소품이다. 방을 가득 채운 크고 푸른 그림을 묻는데, 가난하게 살다간 젊은 화가가 따라 나온다. 바쁘다며 찾아가지 못한 안타까움에 남의 장례식인데도 펑펑 울었던 날과 갈비와 냉면을 실컷 사주어서 다행이었던 날이 떠오른다. 잘 대접하라던 남편이 식당 계산서를 보고, “둘이서 그렇게 많이 먹었느냐?”고 해서 크게 웃었던 날까지.

가져온 샌드위치와 케이크에 곁들여 홍차를 우렸다. 최근 지인이 어떤 이에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비슷한 나이의 그가 “그 나이에 무슨” 이라고 해서 기운이 빠졌다고 했다. 그런데 나이가 더 많은 내가 “무슨 상관이냐?”고 해서 놀란다. 나의 노랑머리를 처음 봤을 때, “아니, 대구에서?” “그 나이에?” 라며 놀랐다는데, 그 놀람이 금세 속까지 후련하게 만들어서 또 놀랐다나. 많이 공부하고 대학에서 강의하는 사람이 일 안 하고 집에 있는 주부에게 놀란다.

어쩌다 하게 된 일에도 이야기가 있다. 나까지 당황스러웠던 머리 스타일과 머리 색에도 할 말이 있다. 예쁘지 않은데도, 기분전환은 확실히 해주었다며, 내가 납득할 때까지 지켜보겠다는 여유와 배짱도 말할 수 있다. 생경한 모습은 먼저 내 눈부터 익숙하게 만들더니, 차츰차츰 사람들 눈도 그리 만들어, 어느새 ‘그 나이에’ ‘아무나 하지 못할’ 나만의 스타일로 정착됐다. 여태 검정색 양말만 쿨한 줄 알고 살았는데, 이제는 알록달록한 양말과 짝짝이 양말도 쿨하다. 수용할 수 있고, 받아드릴 수 있고, 이해할 수 있게 되니, 이야기가 더 많아졌다.

부부 모임에 드레스코드를 정하잔다. 이미 해본 일이 재미있을 리 없다. 남들도 다하는 빨강색 옷과 검정색 옷도 진부하고, 60년대 복고풍과 반짝이 옷도 식상하다. 지루하게 살았으니 다채롭고 재미있게 살기로 하면서, 알록달록한 양말을 신는다는 영국 할아버지와 생전에 짝짝이 양말을 신고 다녔다는 자연주의 건축가 훈데르트 바써를 들먹이면서, “우리도 칼라풀한 스타킹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이번에는 내가 놀랐다. 경상도 여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모든 것은 변한다. 다만, 빠르게와 느리게가 다를 뿐.

나이가 드니, ‘나이답지 않게’가 칭찬 같다. 다른 사람의 인정이 필요 없어지고, 나만 인정하면 된다. 계속 일할 만큼, 신이 날만큼만 벌면 좋겠다는 생각도 버렸다. 방해가 없어지고, 막힘이 없어지고, 거리낌이 사라졌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되는 자유, 나는 그런 자유로움으로 하고 싶은 것을 더 할 수 있다. 그게 뭐든.

이진숙 전 ‘클럽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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