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 위급상황시 영사콜센터에서 필요한 안내를 받으세요.(+82-2-3210-0404)’
명절 연휴를 맞아 해외여행을 떠났다면, 현지 공항에서 휴대폰을 켜는 순간 외교부에서 발신한 이 문자메시지를 보게 될 것이다. 여행을 마칠 때까지 메시지를 떠올릴 일이 없다면 좋겠지만 불미스럽게도 사고가 벌어진다면 그 다음엔 이 생각이 떠오를 터다. ‘위급상황? 영사콜센터? 이런 일로 전화해도 되나?’
재외공관 도움 받을 수 있는 ‘영사조력’ 범위는?
전화를 걸기전 망설이고 있다면 기억해야 할 것은 ‘영사조력’ 범위다. 영사조력이란 전세계 185개 재외공관이 해외체류 중인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제공하는 영사 서비스로, 현재 외교부는 훈령 제104호 ‘재외국민보호를 위한 재외공관의 영사업무 처리지침’에 따라 이를 이행하고 있다. 법적 의무는 아니지만 외교부 직원들이 따르고 있는 행정명령이기 때문에 훈령상 규정된 권리라면 지금 바로 24시간 운영중인 영사콜센터에 도움을 요청하면 된다.
영사조력이 가능한 대표적인 경우가 범죄사건이 발생했을 때다. 사건 경중에 따라 조력도 달라지는데, 도난ㆍ사기 등 재산상 피해가 있다면 공관으로부터 현지 경찰에 신고하는 절차를 안내받을 수 있다. 또한 필요시 경찰에 공정하고 신속한 수사를 요청해주고 도난 물품에 여권이 포함됐다면 여권 및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는 것도 영사서비스의 일환이다.
강력범죄인 살인ㆍ강도ㆍ강간ㆍ강제추행 등에 있어서는 △공정한 수사 요청과 더불어 △의료기관 정보를 제공 받고 △긴급 국내이송을 원할시 항공편 안내 등 행정적인 협조도 받을 수 있다.
경찰 역할 대행, 사적 조력은 불가능
하지만 범죄 사건이라 하더라도 공관이 경찰 기능을 대행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범인 체포와 같은 수사 행위, 신고서 발급, 벌금 대납 등은 공관에 요청한다 해도 즉각 ‘영사조력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올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국민이 체포ㆍ구금됐을 때 현지 영사가 변호사, 사법절차에 대해 안내해 주거나 불합리한 대우를 받지 않도록 현지 당국에 요청해줄 수는 있어도, 석방 또는 감형을 위한 외교적 협상에 나서주지는 않는다.
재외공관이 당사자인 국민을 대신해 경찰에 신고할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실종때다. 범죄 징후가 없는 단순 연락두절이라면 소재 파악 의무가 없지만, 그 외에는 공관도 현지 한인단체 등 연락망을 활용해 실종 국민의 행방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반대로 지나치게 사적인 요청은 삼가는 것이 좋다. 예컨대 필리핀으로 여행온 한 남성이 한밤중 현지 영사에 전화해 “내가 있는 곳으로 지금 사후피임약 좀 사다 달라”고 요청했다는 괴담은 외교가에 전설처럼 내려오고 있다. 외교부 해외안전여행 웹사이트는 ‘영사조력 범위’ 안내 페이지에서 △숙소 및 항공권 예약 대행 △통ㆍ번역 업무 수행 △의료비ㆍ변호사비 지불 △병원과 의료비 교섭 등은 도움줄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정부가 긴급 보호비용 부담도
다만 정부가 더욱 적극적으로 재외국민 보호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커짐에 따라 영사조력을 법적 의무로 규정한 ‘재외국민 보호를 위한 영사조력법’이 지난달 15일 공포됐다. 시행일은 2021년 1월이어서 당장 적용이 어렵지만 시행 후부터는 사건ㆍ사고에 처한 재외국민이 무자력(無資力)이거나 위난상황으로 긴급 대피가 필요할 때 정부가 보호에 필요한 비용을 부담할 수 있게 된다. 또한 미성년자 내지는 환자인 재외국민에 대한 조력 의무도 추가 신설된다.
김정원 기자 garden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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