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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통화 2시간 앞둔 독도경비대 “전화가 불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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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통화 2시간 앞둔 독도경비대 “전화가 불통입니다!”

입력
2019.02.01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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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태 대구 북부경찰서 노원지구대 경위의 잊을 수 없는 설날

[저작권 한국일보]1997년 대통령이 독도경비대에 격려전화를 하기전 갑작스럽게 통신장비가 고장나 애를 먹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저작권 한국일보]1997년 대통령이 독도경비대에 격려전화를 하기전 갑작스럽게 통신장비가 고장나 애를 먹었다. 김광원기자 jang750107@hankookilbo.com
김길태 정보화장비계 경위가 경찰서에 있는 통신장비를 수리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김길태 정보화장비계 경위가 경찰서에 있는 통신장비를 수리하고 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김길태 경위가 초임시절 독도에 근무했을 때 그의 별명은 '맥가이버'였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김길태 경위가 초임시절 독도에 근무했을 때 그의 별명은 '맥가이버'였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김 순경님 큰일 났습니다! 발전기 4대가 다 죽었어요.”

1997년 설날 아침, 누군가 다급하게 나를 깨웠다. 나는 잠이 덜 깬 목소리로 말했다.

“무슨 소리야? 한 달 내내 점검했고, 어제 저녁에도 짱짱하게 잘 돌아갔잖아.”

“발전기가 싹 다 멈췄다니까요. 9시에 대통령 전화 오기로 했는데, 못 고치면 우린 끝장입니다.”

나는 독도에서 통신 반장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독도에서는 발전기에서 자체 생산한 전기로 밥 짓고, 빨래하고 통신장비까지 돌렸다. 발전기가 간혹 고장이 나긴 했지만 4대가 동시에 작동하지 않은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그날은 대통령이 설날을 맞아 오지 근무자에게 격려 전화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갈매기 둥지 머리를 하고 부랴부랴 발전기로 달려갔다.

당시 독도경비대는 경비대장과 부대장, 통신 반장인 나를 포함해 간부 3명과 33명의 전투경찰이 살고 있었다. 내가 나타나자 35명의 대원이 일시에 나를 쳐다봤다. 갖 부임한 경비대장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읍소하듯 내게 말했다.

“어젯밤까지 잘 돌아갔잖아요. 발전기 못 살리면 나도 죽어요!”

장비를 들고 테스트를 했지만,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한 달 전부터 점검을 반복해왔기 때문에 오히려 원인을 추리하기가 더 힘들었다. 머릿속에 드라마처럼 대통령 통화 시도 이후의 상황이 그려졌다.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못하면 당장 불호령이 떨어지겠지. 경찰 생활을 계속할 수 있을까? 경찰을 그만두면 전파상에 취업하는 수밖에 없는데.

“이거다!”

다행히 한 시간 만에 원인을 찾았다. 과전류를 차단하는 퓨즈가 나가버린 것이었다. 원인을 밝혔다는 기쁨도 잠시 다시 머릿속에 하얘졌다. 독도는 매점 하나 없는 오지였다. 전선으로 이었다간 과부하로 더 큰 문제가 생길 수 있었다. 그때 문득 전기원리 수업 중 선생님이 한 말이 생각났다.

‘퓨즈는 전류가 과하게 흐를 때 잘 끊어져야 하기 때문에 열에 쉽게 녹는 금속으로 만든다.’

나는 산삼을 본 심마니처럼 소리쳤다.

“껌종이! 껌종이만 찾으면 된다.”

껌 종이는 종이 위에 얇은 은박으로 쌓여있었다. 은박지를 새끼줄처럼 만들어 퓨즈 대신 사용해보자는 생각이 스쳤던 것이었다.

내 말이 떨어지자 35명이 살충제에 공격당한 바퀴벌레처럼 쓰레기를 모아둔 곳으로 달려갔다. 다행히 껌 종이가 제법 있었다. 나는 껌 종이를 비벼 은박을 하나하나 분리했다. 분리된 은박을 새끼줄을 꼬듯이 꼬아서 퓨즈 모양으로 만들었다.

은박지를 퓨즈 대신 꼽고 조심스럽게 전원을 올렸다. 발전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돌기 시작했다. 순간 독도 전체에 불이 들어왔다. 대원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정확하게 35분 만이었다.

발전기가 작동된 지 30분도 채 되지 않아 청와대에서 연락이 왔다.

“한 시간 후 VIP로부터 전화가 갈 테니 잘 응답하십시오.”

모두가 숨죽이고 있는 가운데 9시 정각에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경비대장은 마치 대본을 읽듯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눴다. 잠시 후 전화기를 내려놓자마자 약속이나 한 듯 모두 환성을 질렀다. 3인치 포 소리보다 더 큰 함성이 독도를 울려 퍼졌다.

매년 설날이면 그날 아침이 떠오른다. 지금에야 웃으면서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생각조차 하기 싫은 끔찍한 경험이었다. 만약 내가 공고를 나오지 않았더라면 그 상황을 모면하지 못했을 것으로 생각한다. 가끔 궁금하다. 그때 다 같이 쓰레기통을 뒤지던 이들은 다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모르긴 해도 설날만 되면 전쟁 같았던 그날의 소동을 이야기할 것이다. 하나 같이 마지막엔 이렇게 말하겠지.

“내가 껌종이를 찾아냈어. 나 아니었으면 대통령 전화 못 받았을 걸?”

<김길태 대구 서부경찰서 정보화장비계 경위(현 대구 북부경찰서 노원지구대)의 구술을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김민규기자 whitekmg@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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