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노의 콜라주 '문자추상'. 가나문화재단 제공

대나무 수묵을 잘 그려 어려서부터 ‘죽사(竹史)’로 불린 화가 이응노(1904~1989). 그는 쉰 다섯 되는 해 별안간 ‘콜라주’(각종 재료를 붙여 작품을 완성하는 기법)에 눈을 떴다. 옛 동양화를 답습하는 화단 풍조에 싫증이 난 때문이기도 했지만, 1950년대 후반 프랑스에 발을 디딘 게 결정적 계기였다. 1957년 뉴욕현대미술관(MoMA)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면서 자신감을 얻은 이응노는 이듬해 유럽으로 눈을 돌려 곧장 파리로 떠났다.

주머니 사정이 그리 넉넉지 않았던 게 되레 큰 힘이 됐다. 양반집 아들로 태어나 일본에서 오랜 유학 생활을 하고 국내 여러 대학 강단에 서기도 한 그였지만, 프랑스에 자리를 잡은 이후 경제적 곤궁은 만만치 않았다. 부침을 겪던 중 우연히 신발 공장 인근에 터를 잡은 게 그의 감각을 깨웠다. 공장에서 나오는 가죽과 천 조각을 캔버스로 옮겼고, 주변에 버려진 잡지와 신문지는 물론 자신이 덮던 이불까지도 소재로 썼다.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2년6개월 간 옥살이를 할 때는 밥풀을 뭉쳐 재료를 만드는 방식으로도 콜라주를 탄생시켰다고 한다. 서울 종로구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리고 잇는 ‘원초적 조형본능’은 이처럼 이응노가 프랑스에 정착한 이후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이응노의 콜라주 '구성'. 가나문화재단 제공

다양한 문자를 콜라주로 추상화한 작품들이 특히 눈에 띈다. 종이를 잘게 잘라 붙인 후 그 위에 노끈을 배배 꼬아 올려 독특한 문자 테두리를 완성해내는가 하면, 솜을 부드럽게 펼쳐 붙여 하나의 기호를 형상화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영락없는 서양화인데, 자세히 보면 한자, 한글을 빼 닮은 문자가 드러나 동양화스러운 느낌이다.

당시 파리에서 한창이던 ‘앵포르멜’ 흐름을 적극 수용한 흔적도 역력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세상은 아름답다”고만 외쳐오던 기존 화풍에 반발한 작가들은 당시 예술가의 즉흥적, 격정적 표현을 중시했다. 이응노는 이를 자기화해 거칠거칠하고 투박한 느낌을 내는 작품을 여럿 빚어낸다. 프랑스어가 빼곡하게 적힌 신문을 뭉친 뒤 물감을 발라 말리고 캔버스에 붙인 ‘구성’ 시리즈가 대표적. 마치 딱딱한 굴 껍질 같기도, 거친 돌 위에 그린 고대 벽화 같기도 하다.

이응노의 '군상'. 가나문화재단 제공

그렇다고 이응노가 수묵화를 등진 것은 아니다. 먹으로 점을 찍어내 문자 형상을 만들거나, 종이 콜라주 위에 먹물을 칠한 작품 등으로 이를 재해석했다. 프랑스로 귀화한 1980년대 들어서는 한국의 광주민주화운동 등을 지켜보며 수묵화 ‘군상’ 시리즈를 남기기도 한다.

전시는 총 3개층으로 꾸려져 1960년대에서 80년까지의 이응노를 각양각색으로 다룬다. 도불 직후 시작된 콜라주 시리즈와 문자추상, 군상 연작 등 7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전시는 10일까지. 설 당일을 제외한 연휴에 문을 연다.

신지후 기자 h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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