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시대 경제개발 계획 참여… KDI 초대 원장 역임
5공 부총리ㆍ국회의원 등도 지내
김만제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원장이 31일 별세했다. 향년 85세.
1934년 경북 구미에서 태어난 김 전 부총리는 미국 덴버대에서 경제학 학사, 미주리 주립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서강대 교수에 임용됐다. 교수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추진한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이 때문에 김 전 부총리는 남덕우 전 총리와 이승윤 전 부총리와 더불어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고도 성장을 이끈 1세대 ‘서강학파’로 불린다. 그는 5개년 계획을 수립한 공로를 인정 받아 1971년 당시 37세의 나이에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대 원장으로 임명됐다.
당시 김 전 부총리는 연구진을 구성하기 위해 해외를 돌아다니며 박영철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구본호 전 울산대 총장,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 등을 직접 스카우트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KDI 수석연구원들의 봉급을 대학교수의 3배 수준으로 정하고 성과급제를 도입하는 등 이들이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그 결과, KDI는 고도성장기 시절 경제개발 논리와 정책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관계와 학계와 수많은 인재를 공급했다. 김 전 부총리가 11년간 원장으로 재직하며 오늘날 KDI의 초석을 닦은 셈이다.
KDI 원장에서 퇴임한 김 전 부총리는 재무부 장관을 거쳐 1986년 경제부총리로 취임하며 5공화국의 경제 정책을 총괄했다. 당시 한국경제는 ‘3저(低) 현상’과 함께 유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관료생활을 마친 후엔 삼성생명 회장(1991~1992년) 포항제철 회장(1994~1998년) 등 민간에서 최고경영자의 길을 걸었다. 포항제철 회장 당시 세계철강협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대구광역시 수성구 갑 선거구에 출마해 당선됐다. 의원 시절 당내 정책위의장을 맡는 등 ‘경제 브레인’ 평가를 받았다.
정계 은퇴 이후에는 대구의 낙동강경제포럼 이사장과 대구광역시 경제고문단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유족은 부인 최구혜 여사와 아들 성우, 딸 지영ㆍ지수 씨.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에 마련됐다.
세종=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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